• [꿈/이야기] 매도 안맞는데 못할게 뭐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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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2.11 09:08:53
  • 조회: 389
>> 인기강사로 ‘말 펀치’ 날리는 홍수환씨

홍수환 선수(59)처럼 ‘챔피언’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암울했던 1970년대 국민들에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란 모자의 순박한 대화와 흑백화면으로 위성중계된 4전5기 시합은 지금까지 신화로 남아있다. 환갑을 앞둔 지금 권투챔피언 홍수환은 또 다른 링에 올라 챔피언을 먹었다. 그는 지금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강사 챔피언’이다.
94년 당시 삼척시장 남동호씨의 권유로 강원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작한 강의가 요즘은 매달 20여건. 환경미화원에서 대기업 CEO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비며 복싱글러브 대신 마이크를 잡고 1200회 이상 ‘말 펀치’를 날렸다. 강의 섭외 1순위다. 10년간의 권투선수 생활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강의를 하며 보내는 홍수환씨로부터 명강의 비법을 들어봤다.

-1~2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3분마다 종이 울리는 권투시합에 익숙해져 길게 말하는 게 힘들 텐데요.
“내 삶 자체가 워낙 파란만장하잖아요. 육군일병 때 남아공까지 건너가 밴텀급 세계타이틀을 땄고, 2차방어전에선 통렬한 KO패를 당했죠. 다시 파나마에서 4전5기의 신화를 만들며 카라스키야에게 역전 KO승을 거두고 주니어패더급 챔피언이 됐다가 또 2차방어전에서 카르도나에게 패배했고…. 두번 이혼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미국에 가서 택시운전에 식당주방일까지 했지만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난 일만 들려줘도 재미있어하죠. 강의 시작할 때 ‘대한늬우스’에 소개된 제 시합 장면을 10분 정도 보여주면 중년층은 추억에 잠기고 젊은이들은 ‘권투가 저렇게 재미있느냐’며 놀랍니다. 권투선수가 큰 목소리로 떠드니 조는 사람도 없고, 아무리 바빠도 강의 끝난 후 원하는 이들에게 모두 사인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죠.”

-‘홍수환 강의’로 불리는 특별한 내용이 있습니까.
“열심히 일하라는 평범한 내용입니다. 내 손이 여자손처럼 고운데 이 주먹으로 두 체급의 세계챔피언이 된 건 오로지 열심히 연습한 덕분이거든요. 권투선수들이 상대를 치고 피하는 건 본능적 감각처럼 보여도 자기 장·단점을 분석하고 상대를 파악하고 연습해서 몸이 따라주는 겁니다. 인생에서 실수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역전의 한 방이 있으니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결점을 극복하라, 맞더라도 두려워 말고 시련을 기적으로 바꾸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누구나 자신감(Confidence)을 갖고 도전(Challenge)하면 기회(Chance)가 생기고 그걸 잘 활용하면 승리자(Champion)가 되고 자신만의 카리스마(Charisma)를 가져야 진정한 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난 매맞고 피흘리는 게 직업이었다. 여기에 맞고 싶거나 자식을 권투선수시키고 싶은 분들 있느냐.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악한 직업인 권투선수도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강의하는데 매도 안 맞는 여러분이 못할 게 뭐냐’고 말하면 다들 박수를 치죠.”

-열강을 해도 매번 호응을 받는 건 아닐 텐데, 가장 힘들었던 강의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현대자동차 직원들에게 강의할 때였어요.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니까 표정도 심드렁하고 ‘그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뭐하러 힘들게 살라고 하나’란 속내가 읽혀져요. 서로 공감을 못하니 분위기가 썰렁해졌죠.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고 정주영 회장인데 직원들의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권투해설, 라디오 DJ도 했는데 말솜씨는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권투처럼 연습하면 늡니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싸움만 하는) 권투선수가 말을 잘하네’예요. 난 일본 중앙대 법대를 나온 아버지의 언변과 식당을 하던 어머니의 체력을 닮은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한국민 만세다’란 유행어를 만든 어머니의 말솜씨도 소문났다. 외상값을 받으려던 가게주인도 어머니의 구성진 말솜씨에 감화되어 번번이 그냥 돌아섰단다).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어떤 일이든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늘어요. 나는 내가 챔피언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힘든 일이건 인내할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자랑스러워요. 미국에 가서 택시운전을 하다 마약운반책으로 몰리기도 했고, 귀국해서도 조직폭력 배후조직으로 오해를 받았지만 참고 견뎌내서 재판을 통해 다 무혐의임을 밝혀냈습니다. 진정한 챔피언이란 ‘참·피·온’, 즉 참을 줄 알고, (역경을) 피하지 않으며 온순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만일 전국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강의가 아니라 공중도덕, 기초질서 지키라는 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아직도 담배꽁초 아무 데나 버리고, 열차 안에서 휴대폰 큰소리로 받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번에 최요삼 선수가 사망한 것도 불법주차한 차 때문에 구급차가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탓도 있어요.”

-이번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유세에도 참가했는데 정치에 뜻이 있습니까.
“난 권투에서 챔피언을 해봐서 인생에선 남들을 챔피언 만들어주는 일로 만족해요. 내가 할 일은 정치가 아니라 권투를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땅값 비싼 대치동 빌딩 1층에 복싱체육관도 만들어 누구나 보게 했고 지난해 12월에 권투인연합회 초대 회장도 맡았어요. 우리 신인 선수들이 한 번 시합하는 파이트머니가 40만원, 매니저비 빼면 28만원인데 그것도 1년에 한두 번 시합이 있을까 말까니 누가 합니까. 최선수는 우리에게 ‘사랑’만 주고간 게 아니라 책임도 주고 갔어요. 권투인협회 차원에서 일단 시합을 많이 늘릴 계획이에요. 권투는 실력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가장 정직한 게임이에요. 그리고 권투시합에선 쓰러지면 말려줄 심판이라도 있지만 인생의 링에서 쓰러지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으니 모두 ‘난 일어설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란 긍정적 자신감을 국민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일하라고 강의하니까 윗사람들이 좋아해서 자꾸 불러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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