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자연의 길, 생명의 길[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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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1.28 09: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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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1일 길 위로 나섰다. 모든 생명에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길. 실상사 주지라는 승가의 직함은 내려놓았다. 길 위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 걷고 또 걷기로 했다. 그리고 빌어먹기로 했다.
도법 스님. 절집에서 바라본 세상은 살기(殺氣)가 가득했다. 한데 절집도 세상 한가운데 그저 그렇게 서 있었다. 그래서 평생을 길에 머물렀던 부처의 흉내를 내보자고 했다. 800년 전 지눌 스님도 나섰던 길. 그렇게 길을 떠난 지 4년. 이 땅 구석구석, 2만8000여리를 걸었다. 그를 따르는 발걸음도 하나둘씩 늘어 7만20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얻어 먹고, 얻어 자며, 때로는 욕까지 얻어 먹은 팍팍한 여정. 눈에 보이는 건 불안과 공포만 남은 길이었다. 사람이 길의 주인인 시절은 벌써 끝났다. 기계가 장악한 길, 속도가 장악한 길이었다. 그 속도에 깔려 죽은 생명의 주검들이 길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그 속도에 인간들도 빨려들어가는 건 아닌지. 농촌을 살리겠다고 만든 길이 농촌을 삼키고 있었다.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떠났다.
생명의 고향인 농촌은 주저앉고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빈 집은 무너지고 있었다. 도법 스님은 순례일기에 “현란한 도시의 불빛이 낳은 자식이 불 꺼진 농촌 사회라면, 불 꺼진 농촌이 낳은 자식이 반생태, 비인간적인 현재의 대도시”라고 썼다.
순례단의 발길은 새만금에도, 낙동강 하구 둑에도 닿았다. ‘순환의 질서’가 끊어진 땅들.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몸을 섞는 화해의 공간이 분단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천성산을 지켜온 지율 스님도 만났다. 도법 스님은 물었다. “생명의 절규를 나 몰라라 하는 국가, 사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의 호소에 응답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인가.”
현대인이 길을 잃어버린 이유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상호의존성, 상호변화성이다. 화엄경에서 말하듯 세계가 그물이라면 낱낱의 존재들은 그물코와 같은 것이다. 너와 나라는 그물코, 인간과 자연이라는 그물코, 정신과 물질이라는 그물코. 어떤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도법 스님은 가는 곳마다 이야기했다. “나는 오로지 대상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자기정체성에 충실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님은 아직 길 위에 있다. 길을 묻고 있다. 그래도 그 길에서 희망을 보았다. 죽임과 죽음이 어려있던 이 땅에 용서와 화해의 기운이 퍼져나가고, 우리 마음에서 분노와 증오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길에서 만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은 작고 조용한 것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희망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을, 함께 꿈꾸면 그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람의 길’이다. 사람의 길과 자연의 길이 공존하는 길이기도 하다.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공식 취재기자’로 부른 저자는 “드문드문 내려가 슬쩍슬쩍 순례단원이 되면서” 스님이 걸어간 생명평화의 길을 간결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글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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