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이길 수 있다면 ‘뻥 축구’ 마다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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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1.23 09: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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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부산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황선홍 신임 감독(40)은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여느 감독의 취임 일성처럼 “목표는 우승이다” “공격축구를 하겠다”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란 호언장담은 나오지 않았다. 불혹의 젊은 감독에겐 꿈도 목표도 없는 걸까. 그는 말한다. “이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못하면 실없는 사람이 됩니다.”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겠다는 신중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황감독이 하고 싶은 축구는 무엇일까. 굳게 닫힌 입술이 조심스레 열렸다.
“이기는 축구를 하겠습니다, 하고 싶습니다.”
못해도 잃을 게 없는 초보감독치고는 무척 겸손한 말투다. 그만큼 더욱 믿음이 갔다.
논리는 뚜렷했다.
“부산은 지난해 26경기에서 39골을 내줬습니다. 거푸 4골을 먹을 때는 ‘네알 부산’이라는 소리도 들었죠. 수비가 자멸하면 한경기 지고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팀워크가 무너지고 맙니다.”
그는 한국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에 나오는 공격수 출신이다. 수비전술은 잘 알까. 답변은 짧아도 단호했다.
“게임당 0점대 실점이 목표입니다. 어떻게 하겠냐고요?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신중한 인터뷰 중 처음으로 한 약속이었다.
황감독은 “공격축구를 한답시고 4, 5골 먹으면 우리만 바보가 된다. 필요하면 ‘뻥축구’도 하겠다”고 말했다.
모델로 삼고 있는 팀은 AC밀란(이탈리아)이다. 요즘 세계축구의 흐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주도한다. 하지만 수비만은 이탈리아가 최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비를 잘하면 비길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는 법. 황감독의 남모를 고민도 여기에 있다.
지난 시즌 부산의 득점은 고작 20골(26경기). 게다가 천부적인 재질이 가장 중요한 공격에서 ‘킬러’를 길러낸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된다는 생각으로 쉼없이 연구하고 훈련하고 또 고민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스타출신의 새내기 감독은 어려운 여건에서 팀을 재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을법했다.
“감독이 된 기쁨은커녕 단 1%의 스트레스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제 머릿속은 언제 어떻게 우리팀을 제대로 만들까하는 생각으로 가득찼어요. 스트레스가 아니라 저와 선수들이 함께 성장하는 재밌는 순간들입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우리의식’을 강조했다.
“동료들과 한마음으로 끝까지 투쟁하는 선수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을 하는 선수가 있다면 고참이든 신인이든 시즌 중에라도 무조건 내보내겠습니다. 황, 선, 홍. 제 이름 석자를 걸고 약속합니다.”
공약은 없다더니 빈틈없는 수비라인을 구축하겠다는 약속에 이은 두번째 약속이다.
그렇다면 황감독의 올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돌아온 답변은 “지금은 팀을 어떻게 잘 만들까 고민하느라 목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였다. 한번 더 채근했더니 역시 신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굳이 밝힌다면 한자릿수 순위, 중위권 정도.” 부산은 지난시즌 13위에 그쳤다. 뒤에서 두번째였다.
‘너무 겸손한 목표가 아니냐’고 묻지 못했다. 최근 15명 선수 교체, 초보감독 부임, 평균치를 밑도는 용병, 텅빈 관중석…. 부산의 현 상황은 좋은 성적을 내기에는 부족한 게 많기 때문이다.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길 때는 화끈하게 이길 것이며 지더라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관중을 묶어둘 수 있는 패기있고 감동적인 플레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황감독은 이어 세번째 약속을 했다.
“성적이 좋든 안좋든 아무런 공치사도 없을 것이며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겠습니다. 잘하면 선수들 덕분이고 못하면 못난 감독 탓입니다.”
신중하게 한 3가지 약속. 이제 약속을 지킬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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