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가장 아름다운 폐허에 매혹되다[왕도의 길 앙코르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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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1.23 09: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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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죽음과 시간의 얼굴
젊고 야심찬 학자, 클로드와 노회한 탐험가 페르캉은 밀림 속으로 떠난다. 흔적만 남은 왕도의 길을 더듬으며. 그들을 그 원시와 죽음과 위협의 땅으로 밀어넣은 것은 욕심이다. 표면적으로는 돈에 대한 욕심이지만, 그 근원으로 파고들어 가보면 죽음과 맞닥뜨린 인간의 절박함이 숨어 있다. 왕도의 길,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길이지만, 죽음으로 다가가는, 죽음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왕도의 길. 그곳에 바로 앙코르와트가 있다.
앙드레 말로의 소설 ‘왕도로 가는 길’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앙드레 말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고고학 탐사가로, 모험가로, 혁명가로, 비행대장으로, 전차병으로, 유격대장으로, 정치가로, 웅변가로, 예술철학자로 격렬하게 살며 동시대인에게 “죽음을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1920년대, 20대 초반의 나이에 극동아시아에 머물며 고고학 탐험과 혁명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캄보디아에서 도굴범으로 체포되어 3년형을 구형받았다가 프랑스 국내의 구명운동 덕분에 간신히 석방된다.
“그 폐허를 덮고 있는 표현키 어려운 형용할 수 없는 불안이 마치 죽음의 힘 같은 괴이한 힘으로 그 조각들을 지켜온 것이다. 그리하여 몇 백 년을 거쳐온 그 석상들의 몸짓이 폐허에 들끓는 지네떼와 짐승들의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페르캉이 옆을 지나갔다. 순간 흡사 천길 만길 깊은 바다 밑에 잠긴 듯한 폐허는 그 두 백인의 출현에 맥없이 생명을 잃고 현실세계로 떠올랐다. 마치 바닷가 모래언덕에 떼밀린 해파리처럼.” - ‘왕도로 가는 길’ 중

#2.앙코르와트에 대한 서구인의 자세
그러나 앙드레 말로를 앙코르와트로 떠민 것은 철학적으로 미화된 죽음에 대한 경도만도 아니고, 물론 돈 때문만도 아니다. 뛰어난 심미안을 자랑했던 앙드레 말로는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했다. 서양이 만들어내지 못한 아름다움을 제 있던 데서 끌과 톱과 망치 등 원시적인 도구로 거칠게 떼어오려 했던 그의 시도는 순수한 데가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앙드레 말로가 앙코르와트를 대하는 태도는 서구인들이 앙코르와트를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들이 발견하기 전에는 신비의 텅 빈 도시였던 곳. 그들이 발견한 후에 비로소 빛나기 시작한 보석. 그들의 눈에는 앙코르와트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16세기에 이곳을 방문했던 선교사 리바드네이라는 앙코르톰을 “폐허가 된 고대도시에 캄보디아란 나라가 있다. 혹자는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세웠다고 하고, 혹자는 알렉산더 대왕이 만들었다고도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벌레나 나무와도 다를 바 없었던 캄보디아 원주민들이 바로 앙코르와트를 만든 이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서구인의 오만한 시선은 지금의 앙코르와트 신화를 만드는 데 한몫 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날 앙코르와트를 ‘발견’했다고 믿는다. 앙코르와트는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지만, 세계의, 특히 유럽인의 관심을 사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식물학자인 앙리 무오(Henri Mouhot, 1826~62)의 스케치와 여행기 덕분이다. 그는 1860년 1월 앙코르 왕도를 방문하여 3주를 보내며 “솔로몬왕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와 같이 뛰어난 조각가가 세운 앙코르와트. 이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세운 것보다도 더 장엄하다”고 감탄했다. 그가 매혹되었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서구인들을 음습하고 황홀한 정글로 이끌었다.
유적의 발굴을 “미지의 힘, 더러운 힘이 지배하는 비천한 세상인 밀림 속, 부패되고 정체된 세계로부터 예술을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인간의 세계로 돌리려는 움직임, 행동 그 자체”로 이해했던 말로의 입장에서는 유적 도굴이라는 게 죄이기는커녕 신성한 임무였을 수도 있겠다. 그러한 서구인들의 뒤집힌 인식은 앙코르와트를 훔쳐내고 부수는 데 일몫을 하기도 했지만, 복원하고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도굴꾼이었던 그가 드골 정권 아래 문화상을 역임할 때 앙코르 유적의 복원을 위해 기울였던 지대한 관심을 떠올려보라.

#3. 영상으로 옮기다
앙코르와트는 압도적인 죽음과 영원의 이미지에서 단순히 아름답고 이국적인 외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미지 생산자들의 눈길을 끌었으나 막상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안젤리나 졸리가 섹시한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로 나오는 영화 ‘툼레이더’에는 타프롬과 바이욘 사원, 그리고 100여명의 현지 불교 수도사들이 등장하는데, 1965년에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모험영화 ‘로드 짐’에서 촬영된 이후로는 처음 촬영된 것이다. ‘로드 짐’은 조셉 콘라드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기초로 만들어진 모험영화로, 피터 오툴이 ‘짐’ 역할을 맡았다. 원작의 배경은 앙코르와트가 아니지만 원작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마음껏 살릴 수 있는 배경으로 앙코르와트 만한 곳이 없었던 것.
앙코르와트에서 찍은 영화가 많지 않은 이유는 앙코르와트가 유엔이 정한 세계 10대 유산 중의 하나로 유적 보존을 위해 촬영이 쉽게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호랑이가 주인공인 영화 ‘투 브라더스’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캄보디아 왕자와 절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앙코르와트 촬영이 가능했던 흔치 않은 경우다. 캄보디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건축가와 고고학자들이 정한 대로 스태프들이 다니는 길에 보호막을 설치하는 등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짧게 보여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앙코르와트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킨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다.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오래된 돌 틈에 가만히 이야기를 남긴다. 편집 전의 장면에서는 앙코르와트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재회하지만, 완성된 이야기에서는 양조위만이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앙코르와트는 시대가 없는 곳이란 점, 그리고 시간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어서 좋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 영원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앙코르와트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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