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팬양의 화이트 버블쇼’기획·제작 이정호·장현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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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1.17 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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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방울 꿈을 띄웠습니다”
족공연이야말로 종합예술(?)입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멱살잡히기 십상이죠. 실제로 몇 번 잡혀본 적도 있어요.”
‘비눗방울에 인생을 건 두 사나이’ 이정호(39)·장현기(35)씨. 두 사람은 어린이대공원 내 돔아트홀에서 오는 27일까지 공연되는 ‘팬양의 화이트 버블쇼’를 기획·제작한 (주)네오더스의 공동대표다.
팬양(Fan Yang·46)은 베트남계 캐나다인으로 비눗방울 아티스트. 버블쇼는 팬양의 불우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와 환상적인 비눗방울 묘기가 어우러진 공연으로 지난해 6월 미국까지 진출했다. 자주 오해받곤 하지만 수입산 공연이 아니다. 기획은 물론 연출, 무대 디자인, 음향, 조명, 영상, 특수효과, 공연 OST 등 모든 것을 했다.
“문화관광부 후원을 받기 위해 신청했는데 거절된 적이 있어요. 팬양이 외국인이니 수입공연으로 오해한 거죠. 지난해 12월 예매 사이트 판매 순위 10위에 오른 공연을 보니 ‘명성황후’와 ‘버블쇼’ 두 개를 빼고는 모두 수입공연이더군요. 제대로 된 가족공연을 만드는 게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두 사람은 워커힐 호텔 선후배 사이다. 이정호씨는 가야금홀 기획자, 장현기씨는 무대감독이었다. 팬양을 알게 된 것도 호텔에서 근무할 때였다. 공연 신청서를 낸 크고 작은 공연자들 중 팬양이 있었다. 이정호씨는 팬양의 공연을 추진했지만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공연장 특성상 매일 비슷한 공연을 반복하다보니 갈증이 났습니다. 그런 때에 제가 기획한 팬양 공연도 이뤄지지 않았죠. 독립해서 하고 싶은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죠.”(이정호)
마침 장현기씨도 비슷한 무렵 회사를 나왔다. 무대감독으로 1년에 무려 700번의 큐사인을 줘야 하는 일에 회의가 일던 때였다. 그는 아내와 4개월간 미국여행을 하며 200여개의 공연을 봤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함께 팬양의 공연을 해보자는 이정호씨의 제의를 받았고 두 사람은 곧장 팬양이 있는 미국 LA로 날아갔다. 2004년 당시 팬양은 행사장이나 클럽에서 30분 정도 비눗방울 묘기를 선보이는 버블맨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구상한 연출, 무대 세트, 음악, 시나리오, 퍼포먼스 등을 브리핑했고 팬양은 열정에 넘치는 낯선 젊은 기획자들과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다.
네오더스는 그 해 3월 설립됐고 두 달 뒤인 5월5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팬양의 첫 국내 공연을 가졌다. 매진이 될 정도로 대성황이었으나 경험 부족으로 큰 시행착오를 겪었다.
“엄마들이 키 작은 애들을 위해 방석을 달라는데 아차, 싶었어요. 방석 준비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또 유모차는 어디에 보관하느냐, 수유실은 없느냐 등등 난리가 났죠. 1000석이 매진돼 보조석을 깔았는데 혼선이 빚어져 멱살까지 잡히게 됐어요.”(장현기)
그 해 12월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는 12회 공연 모두 매진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360여회의 공연을 했다.
팬양과 두 사람은 해외로 진출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첫 공연지는 팬양의 고국 베트남 하노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팬양은 고국 어린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멋진 비눗방울 쇼를 선물하고 싶었다.
“2006년 3월이었어요. 베트남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티켓이 우리 돈으로 6000원 정도 하는 공연은 2만원짜리 암표가 나돌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무대시설이 열악해 밤새워 작업하는 등 힘들었지만 보람이 컸습니다.”(이정호)
시련도 있었다. 2006년 동유럽 벨로루시 공화국에서의 초청 공연 당시 현지 기획자는 10일간 3억원의 출연료 및 제작비를 약속했다.
“공연 당일까지도 기획자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예매한 티켓 판매료까지 챙겨 도망을 간 후였죠. 총을 든 군인들이 공연을 하지 않으면 2억원 상당의 장비도 줄 수 없고 저희도 돌아갈 수 없다고 협박하더군요. 이미 표를 사놓은 관객들은 극장에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했고요.”(장현기)
팬양과 직원들은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열흘 동안 공연 시간이 되면 숙소 앞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봉고차에 올라 공연장으로 가서 버블쇼를 마치고 다시 봉고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감금생활’을 했다. 딱딱한 빵과 수프를 먹으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공포에 떨어야 했다.
“나중에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제 살았다’ 싶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수익은 고사하고 장비 운송비며 기타 비용 등 2억원을 고스란히 손해봤죠. 장비도 6개월 만에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공연 반응은 정말 좋았습니다. 하하.”(이정호)
지난해 1월에는 브로드웨이 50번가에 자리한 500석 규모의 극장 뉴월드스테이지에서 6개월간 장기공연도 했다. 1주일간은 썰렁한 관객 반응에 밤잠을 설치며 수정작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웃음 코드도 달랐고 공연의 기대치도 달랐다. 기존 레이저 장비 6대를 20대로 늘리는 등 순발력을 발휘한 덕분에 관객들의 만족도는 점점 높아졌다. 지금까지 해외공연은 310회에 이른다.
네오더스의 ‘버블쇼 성공’을 두고 공연계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11명의 연봉도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네오더스의 성공비결은 모든 직원이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자’ ‘비도덕적인 관행은 따르지 않는다’ 등등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형편이지만 공연 장비는 수억원에 이를 만큼 좋은 공연을 위해 재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성공비결 중 하나다. 회사는 아직 가난하다. 하지만 공동대표 두 사람과 직원들은 버블쇼 외에 앞으로 선보일 가족공연들을 계획하며 무지갯빛 비눗방울처럼 행복한 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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