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속세를 떠나 극락 절경과 만나다[충북 보은·경북 상주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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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8.01.03 09: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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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다. 신라 선덕왕 5년(784년) 진표(眞表)율사가 이곳에 이르자 밭갈이를 하던 소들이 무릎을 꿇어 율사를 맞이했고, 이를 본 농부들이 속세를 버리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속리산은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다. 해발 1058m로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온 소백산맥 줄기 한가운데 솟아 있다.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해 변성퇴적암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고,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올라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다.
속리산에는 산이름과 석문(石門)·대(臺)·봉(峰)이 각각 8개씩이다. 산이름은 속리산과 광명·지명·구봉·미지·형제·소금강·자하산 등이, 석문은 내석·외석·상환석·상고내석·상고외석·비로석·금강석·추래석문 등이다. 대는 문장·경업·배석·학소·은선·봉황·산호대 등이, 봉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비롯해 비로·길상·문수·보현·관음·묘·수정봉 등이다.
복천암, 상환암 등 크고 작은 암자도 8개다. 다리도 8개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수정·태평교 등 3개만 남아 있다.
문장대는 상주 쪽에, 이를 제외한 봉과 대는 보은 쪽에 위치하고 있다. 상주 쪽에는 용유동계곡, 쌍룡폭포, 오송폭포, 장각폭포, 옥량폭포, 용화온천 등도 있다.
속리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법주사, 문장대, 정2품송이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법주사 경내에는 국보인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련지,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등 문화재가 많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로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위가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정2품송은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 것을 염려해 ‘연 걸린다’고 소리치자 소나무 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이 전해 내려와 ‘연걸이 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에게서 정2품송이란 벼슬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강풍에 우산 모양의 아래 양쪽 가지가 부러져 나가 예전만큼의 우아한 자태를 찾아볼 수 없다.
속리산은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 가을에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에는 설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수려하다. 심산유곡과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627종의 식물과 큰잣새, 붉은가슴잣새, 딱따구리, 사향노루 등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84년엔 속리산 줄기인 화양동도립공원과 쌍곡계곡 일대가 편입돼 확장됐다. 화양동계곡에는 조선후기 학자 송시열 선생이 은거하며 필적을 남긴 화양구곡과 이황(퇴계)이 찾아왔다가 도취되어 노닐었다는 선유동구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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