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현실의 절망과 이상적 희망의 화해[도끼와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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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21 09: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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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난해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플레셰르 개인전’을 가졌던 미술가와 동일 인물이다. 1944년 유대계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언어학·인류학 등을 공부한 뒤 여러 대학에서 영화·사진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 프레누아 국립현대미술스튜디오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소설가로서 그는 50대 중반을 넘긴 2000년대 들어 부쩍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2004년작인 ‘도끼와 바이올린’은 그 중에서도 발군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달콤하고 시시한 소설에 물린 독자, 소설읽기를 통해 나른해진 두뇌의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치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하다. 다양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참조점을 가진 데다 복잡한 플롯과 풍부한 상징, 빽빽한 의미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1930년대 유럽에서 2043년 중국까지 아우르는 시공과 다채로운 글쓰기로 독자의 흥미를 잡아끈다.
문명의 양면성을 가리키는 ‘도끼와 바이올린’은 1부 역사, 2부 소설, 3부 악몽으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 1930년대초 부다페스트 인근 유대인 집단거주지역에 사는 음악선생 벨라는 자신의 창문 아래서 세계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한다. 젊은 연인이 신비한 재앙에 의해 희생되고 이어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 도끼라고 이름붙여진 얼굴 없는 재앙을 놓고 다양한 질문과 해석이 나오는데 결국 음악이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은 음악을 전적으로 금지하기도 하고 효력이 없자 애국적인 군대음악을 장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벨라의 스승 샤만스키는 재앙의 공격대상은 인간의 최상의 부분인 음악이며 음악을 울려퍼지게 함으로써 이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음악이 온천지에 흘러넘치지만 음악조차 권력을 잡으려는 무리에게 이용됨으로써 진정한 종말이 다가온다.
한편에서는 벨라의 개인사가 펼쳐진다. 독신 부르주아 남성인 벨라는 에스테르라는 이름의 세 여인과 생활을 나누고 있다. 아침의 에스테르는 가정부, 오후의 에스테르는 피아노 제자, 밤의 에스테르는 정부(情婦)인데 이 세 여인은 실제로 동일한 인물, 즉 그의 조카이다. 세 여인의 분할에 의해 유지되던 그의 삶에 조금씩 분열이 생기면서 세 명의 에스테르는 모두 그를 떠난다. 그러나 세 명이 합쳐진 새롭고 완벽한 에스테르가 찾아오는데 그녀는 유령으로 밝혀진다.
2부는 나치즘이라는 광기에 대한 성찰이다. 긴 동면에서 깨어난 벨라의 눈 앞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나치군인들이 음악학교를 급습해 사람들을 끌어내고 학살하고 포로로 끌고 간다. 여기서도 벨라는 세 명의 에스테르와 관계를 맺는데 그의 질녀이자 음악제자인 에스테르가 군인들에게 끌려가고 정부인 에스테르도 이별을 통고한다. 그날 밤 벨라는 악몽을 꾸는데 꿈 속에서 독일인 장교의 몸 속에 들어간다. 이는 선량한 시민인 벨라가 실제로는 점령군 장교의 기생충이요, 점령군 장교는 유럽시민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독일인 장교는 잡혀온 포로 에스테르의 옷을 벗기고 음악을 연주시키면서 즐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뼈와 내장, 즉 고깃덩이일 뿐이다. 여기서 부르주아의 보수성에 영합하는 쇼팽, 슈만, 리스트, 멘델스존 등의 음악은 카바레 음악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마지막 3부에서 작가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꾼다. 서구에서 절망한 벨라는 유대교로 개종한 뒤 중국여인 에스테르 찬과 결혼해 중국으로 간다. 여기서 벨라는 7000명의 중국아가씨와 대자연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도끼’와 ‘바이올린’은 비로소 화해에 이른다. 정신과 물질, 이성과 자연, 죽음과 생명, 남성과 여성 등이 화해한다. 서구남성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느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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