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저항하면 피곤” 무기력… 기성세대 편입 노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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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21 0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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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구출하라]

순응에 익숙해진 20대

20대는 자기들이 살기 어려운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바꾸려 하기보다 기성체제에 편입하려 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그들의 사고체계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요즘도 물론 20대들이 지원을 하기는 해요. 그러나 그들은 시민운동을 하려고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직장 개념으로 생각해요. 경력 쌓기를 위해 지원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지원 전에 전화해서 연봉을 물어보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20대가 일할 때 보면 기업이나 기득권, 보수언론이 제공한 논리에 젖어 있는 이들이 많다”며 “일을 하면서 기업이나 여러 사회 기득권의 문제를 알고는 충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비판 의식, 정치 의식을 찾기 힘들어요. 고교 때는 수능, 대학 때는 취업 공부에만 매달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걸 두고 20대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20대는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말도 사실 편견에 가깝다. 실제 소속된 집단에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은 드물다. 순응의 처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입사 2년차 회사원 한모씨(26)는 “회의나 회식 자리에서조차 상급자가 묻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서 “순응하는 게 편하지 반항하면 피곤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괜히 상급자에게 바른말 했다가 업무적으로 보복을 당하느니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했다. 입사 3년차 김모씨(27·여)도 “30, 40대 선배들에게 불만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면 해결도 안될 뿐더러 엉뚱한 방향으로 일파만파로 커진다”고 했다. 김씨는 “아무도 총대를 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면서 넘어간다”고 했다. 그는 “그냥 순응해서 사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회 이슈건, 자기문제건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생각과 행동을 공유하려는 연대의식은 20대들에게 희박하다. 그들의 유일한 연대 대상은 취업이다. 대학내 ‘공모전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공모전 동아리란 기업들이 대학생을 상대로 기업과 상품 이미지 개선 아이디어 등을 공모하는데 이를 공동작업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서울대 N-CEO, 연세대 GMT· MARP, 고려대 FES·MCC, 한양대 HESA, 경희대 Proseed와 같이 이름이 알려진 공모전 동아리이다. 그만큼 가입절차가 까다롭다.
파워포인트 제작 능력, 프레젠테이션 기술 등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동아리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경험이 많은 선배들과 팀을 짜 대기업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입상경력을 쌓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개인적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연합인 것이다. 공모전에서 상을 타거나 경력쌓기라는 목적이 달성되면 뭉쳤던 팀은 금세 흐지부지된다.
한때 대학생을 한자리로 모았던 이슈가 있었다. 등록금 인상반대 투쟁이다. 올해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689만3000원에 달한다. 매년 6% 이상 오르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등록금 상승에 의외로 무신경하다.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사립대 총학생회는 학교측 인상안에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동료 학생들은 관심이 없었다.
결국 이들 총학은 학교측이 제시한 한자릿수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현재씨(25·성균관대 4학년)는 “등록금이 많이 오른다지만, 부모님이 대부분 내주고 있어 체감을 잘 못하겠다”며 “설사 비싼 등록금에 불만이 있어도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단체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말했다.
올봄 부당해고를 당한 울산과학대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알몸시위’를 벌였을 때의 일이다. 학생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학(勞學)연대’의 깃발을 드는 대신 일부 학생 대표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물리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협박을 했다. 지난해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 노조에 대해 학습권을 침해한다며 공격했다. 학생들은 당시 박철 총장에게 ‘직원들에게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지키라’는 내용의 편지를 100통 넘게 보냈다. 2005년 고려대 한 운동단체의 이건희 삼성회장 명예박사 학위수여식 저지 투쟁은 학생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유세가 있던 지난달 13일 오후 아크로폴리스 광장에는 50여명이 모였다. 모두 선거운동원들이다. 후보의 연설을 운동원말고 듣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학생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강모씨(27·서울대 4학년)는 “유세 소음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항의하는 게 오히려 요즘 이슈”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학생 사이에서 사회 이슈가 관심사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올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파병, 남북정상회담, 대선도 그들에게는 아랑곳 없다. 그렇다고 대학생의 이해 관계가 걸린 청년 실업 문제를 두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정성용씨(21)는 “비정규직 문제나 대선 같은 사회적 이슈는 학내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왜 연대가 사라졌는가. 서울대 총학선거 운동권 후보였던 최기원씨(25)는 “지금 20대가 토익책만 붙잡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라며 “사회적 발언의 통로구실을 했던 학생회가 몰락하면서 20대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이 학생회나 다른 단체를 통한 연대의 경험이 없다보니 자신의 문제를 남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이 서툴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박모씨(25·성균관대 4학년)는 최씨와 생각이 다르다. “파업, 투쟁이 언론에서 부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20대들은 누군가와 연대해서 단체행동을 하는 것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단행동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었냐”며 “차라리 그 시간에 나 혼자 공부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386세대인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1987년 민주항쟁 때도 도서관에 가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항상 우리한테 미안해 했었다”고 회고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찾기 힘든 태도이다.
홍세화씨는 “요즘 20대들은 40~50대와 달리 정치적 동물로서 요구받는 사회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돈만 아는 경제적 동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비단 20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고, 대학 당국까지 돈벌이 장사에 나서면서 20대들이 사회에 눈뜨는 계기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88만원세대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파편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 탓도 있지만 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며 “집단적으로 뭉칠 수 있도록 앞장서는 정치적 대변인이 없기 때문에 청년실업과 같은 사회적 문제도 개인이 해결하려는 식의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조교수는 “386세대는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지만 신자유주의가 지금의 실업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모순적인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88만원세대도 자연스럽게 점점 더 신자유주의에 의탁해 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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