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슬로프를 기어내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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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21 09: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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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스키 체험기
지난 6일 강원 정선군 하이원 리조트 초급자 슬로프 아래 평지. 찰칵, 하고 스키부츠가 스키 플레이트에 끼워졌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사실, 10여년 전 한번 타 본 적이 있긴 하다. 슬로프 정상에서 바닥까지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스키 플레이트는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고, 지나가던 스키어들은 스키를 세우고 괜찮으냐고 물어봤다. 그날 밤새 놀이공원의 ‘바이킹’을 타는 꿈을 꿨다. 다시는 스키 같은 건 타지 않겠노라고 굳게 결심했는데.
난관은 탈의실부터 왔다. 스키복을 빌리기는 했는데, 바지를 벗고 입는 건지, 바지 위에 겹쳐 입는 건지 난감했다. (대개 벗고 입는다) 스키부츠를 어떻게 채우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걸쇠가 뒤에 있다) 부츠가 꽉 끼어 발가락이 아파왔다. 스키는 키보다 10~15㎝ 작았다. 맞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대로다.
스키냐 보드냐. 젊은 사람들은 대개 보드를 탄다더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젊은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보드에 기대 서 있었다. 인터스키스쿨 김건수 강사는 “스키가 보드보다 2배 어렵다”고 했다. 스키 날은 4개, 보드 날은 2개. 보드는 한 쪽 중심만 맞추면 되지만 스키는 양쪽 중심을 맞춰야 한다. 다만 보드는 3초에 한번씩, 200번쯤 넘어진다고 했다.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스키로 낙찰.
“슬로프 아래쪽의 스키부터 신는 겁니다.” “폴은 손에서 빠지지 않도록 끈까지 함께 잡습니다.” “스키를 분리할 때는 몸의 무게를 이용합니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넘어졌을 때는 스키를 모아 하늘로 보게 한 뒤 다리를 배에 붙이고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이것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의 체중을 실어 밀어보세요”는 체중만 실리고 밀어지지가 않았다. 하이원 스키스쿨 황병철 강사는 “스키라고 부담 갖지 말고 그냥 긴 신발을 신었다고 생각하라”고 채근했지만, 스키는 스키고 신발은 신발이다.
스키 강습 첫날은 ‘A자’ 자세를 익히는 날. 먼저 스키 플레이트를 A자 모양으로 만든다. 폴 끝은 양 발 옆으로 오게 한다. 무릎은 앞으로 살짝 기울인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 다리에 힘을 주면 오른쪽으로 간다. 멈출 땐 플레이트를 밀어 A자의 각도가 커지게 하면 된다. 자, 출발!
출발은 A자였으나 11자가 되더니 급기야 V자가 되었다가 가까스로 A로 만들어 멈췄다. 어쨌거나 성공. 으쓱하며 돌아보니 외국인 관광객 한 명이 한창 넘어지는 중이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 모로코에서 왔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스키를 타 본다고. 모로코에도 실내 스키장은 있단다.
주먹을 불끈 쥐고 리조트 최정상, 초급자 슬로프로 올라갔다. 20여분이나 곤돌라를 탔다. 찬바람이 부는 1345m 정상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다리가 떨렸다. 여기서 ‘지상’까지는 4.2㎞. 중도 포기할 수도 없다. 2시간 강습 받은 왕초보가 탈 곳이 아니다. 스키를 들고 터덜터덜 곤돌라로 돌아갔다. “…저기요, 이것 타고 다시 내려가도 되나요?” 직원이 빙긋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길이 1.8㎞, 평균 경사 8.7도의 ‘무난한’ 초급자 슬로프엔 ‘동지’들이 있었다. 슬로프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앉아 있는 보더들을 보고 마음이 놓였고, 스키를 벗어 들고 걸어가는 스키어를 보고 감사했다. “어어 죄송합니다!” 소리를 지르며 좌르륵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기 전까지는. 스키는 옆으로 넘어질 뿐, 앞뒤로는 넘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완주’까지 33분 걸렸다. 시속 4㎞다. 스키는 스피드를 즐기는 스포츠라는데, 이건 완전히 걷는 속도다.
엉덩방아의 해결책은 무게 중심에 있었다. 첫째, 앞으로 기울여야 한다. 몸을 뒤로 빼면 스키가 들리고 속도가 빨라진다. 둘째, 지그재그를 그리며 내려와야 한다. 정면으로 내려오면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내려오되, 속도가 빨라진다 싶으면 다리에 힘을 줘서 방향을 튼다.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내려왔어요! 허리, 발가락, 주먹이 아플만 하니까 요령이 생기나봐요!” “아, 그래요? 그런데 스키는 원래 허벅지가 아파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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