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진정한 女王[엘리자베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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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20 09: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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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영제국을 남편으로 섬기고 있노라.”
대영제국의 태평성대를 이룬 엘리자베스 여왕은 1558년 25살의 나이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신교와 구교가 충돌하고 주변 강대국이 나라를 넘보던 시절, 영국 사회가 여성 군주에게 요구한 것은 남편이었다. 하원 대표단은 ‘하루빨리 부군을 얻어 남자에게나 어울리는 각종 노고로부터 벗어나라’고 청원했고 여왕의 오른팔이었던 세실 경마저 치마폭에 싸인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결혼을 독려했다. 엘리자베스는 ‘백성 위에 군림하되 남편의 소유물이어야 했던’ 여왕의 지위를 조용히 그러나 과감히 바꿔놓는다.
그녀가 결혼을 거부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헨리 8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 앤 불린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세살 때 어머니가 역모죄로 참수당하면서 사생아로 전락했다. 왕위계승 순위에 다시 오르고 나서는 성희롱 사건을 겪으면서 상대는 참수형을 당하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맞아야 했다. 신교도 300명을 화형시키며 ‘블러디 메리(피의 메리)’로 불렸던 이복 언니 메리여왕의 불행한 국제결혼도 영향을 준 듯도 하다. 어느 한 나라의 군주와 결합한다면 다른 나라들과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영국 내의 가문과 혼인할 경우 나라 전체가 파벌 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다. 더불어 아들을 낳았다간 퇴진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25년간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과 오간 혼담을 밀고 당기며 국제관계를 조율하는 솜씨를 보여준다. 심지어 10년을 끈 혼담도 있었다고 한다. 모략의 기술에 있어 대가의 경지였다.
“불임이다” “아이를 몰래 낳았다” 등의 유언비어가 ‘처녀 여왕’의 정치적 성공의 뒤를 따랐다. 천성적으로 바람기가 있었고 유부남 더들리와의 친분은 오랜 소문거리였다. 비방을 한 사람들이 귀가 잘리거나 수감되는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궁금증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45년간의 통치기간 동안 그녀는 ‘처녀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놓지 않았다.
국교를 신교로 바꿨지만 구교 추종자들을 존중했던 관대함, 백성들과 일일이 악수할 줄 아는 자상함, 그러나 자만심 강하고 변덕스럽고 거만했던 사생활…. 대중적 역사 서술로 ‘영국의 시오노 나나미’로 불리는 위어가 엘리자베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했다. 10년간의 연구 끝에 77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엮었지만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신빙성 없는 자료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 않으나 더들리 부인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부분에서는 살짝 그녀만의 추리를 더하기도 한다. 튜더왕조를 중심으로 일련의 저서를 발표해온 저자는 ‘헨리 8세의 여인들’ ‘헨리 8세의 아이들’을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린 시절을 미리 풀어낸 바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골든 에이지’와 비교해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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