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교감하되, 예술적 독립”[연극 ‘선동’ 함께 만드는 김청조·양정웅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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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18 09: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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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들은 담배부터 빼어 물었다. 아들은 3년이나 끊었다가 돈문제로 공연이 오락가락할 때 다시 쥐었고 어머니는 암까지 걸렸지만 놓지 못했던 담배다. 두 사람은 끊어라 피워라 승강이 하는 대신 불을 붙여주고 담배를 나눠갖는 사이가 됐다. 인터뷰 내내 이들이 내뿜는 연기는 서로 만나 산모양을 이뤘다가 구름처럼 흩어졌다. 함께 연극하는 모자, 작가 김청조(62)와 연출가 양정웅(39)을 만났다.
두 사람은 12월13일부터 15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연극 ‘선동(仙童)’을 함께 만들고 있다. 어머니가 극본을 썼고 아들이 연출한다. 올해 초 작품의뢰를 받았을 때 두 사람은 함께 만들기로 마음을 모았다. 소재가 단원 김홍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아들은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어머니는 “정웅이는 3살 때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고 기억했다. “종이만 있으면 그렸죠. 자고 있으면 자꾸 깨워서 종이를 달라고 졸랐어요. 종이를 주면 어린 것이 밤새도록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남편)도 저도 글쓰는 사람들이라 원고 파지가 많았는데 그 뒷면에 참 많이 그렸어요. 귀찮기도 하고 글 써놓은 종이가 아깝기도 했는데 ‘그래. 우리(부부)는 멈춰있고 지금은 네가 열려있는 예술가다’라고 생각하면서 원고지를 많이 줬지요. 그림으로 된 성서를 보더니 예수님이 너무 오래 매달려 있다면서 내려오는 모습을 그려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아예 아들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커다란 물통과 물감, 종이를 내주고 마음껏 그리고 놀게 했다.
어머니 자신도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아들은 “큰외삼촌, 이모 등 외가 식구들이 다 그림솜씨가 좋으셨다”며 “집에 늘 화집과 그림에 관련된 책이 많았다”고 했다.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컸던 어머니는 문을 덮은 창호지에도 그리고 커피를 마시다 티스푼으로 크림뚜껑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끼적거리기만 하다 2000년부터는 한국화를 배우기도 했다. 그때 배웠던 그림 중에 김홍도의 그림들도 많았다.
작품을 쓰기로 한 어머니는 6월부터 김홍도에 관한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극단 노뜰이 강원도 원주에서 연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신청해 들어가기도 했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숙식하며 창작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들은 “젊은 사람들 가는 곳”이라며 말렸지만 어머니는 “연극에서 난 신인이다. 신인이 못갈 곳이 어디냐”며 내려갔다. 석달동안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고생했지만 산고(産苦)만 있을 뿐 작품은 통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김홍도를 오게 해달라고 초혼시까지 썼지만 영감이 오지 않아서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대장에 생긴 15㎝짜리 혹도 잘라냈다. 암투병과 극본작업을 함께한 것이다.
9월 초 원주에서 나온 뒤 아들과 약속한 기한도 넘겼지만 어머니는 한 줄도 못썼다. 휴대전화 탓을 하며 아들의 전화도 안받았다. 10월 자신이 아트디렉터로 참여한 단편영화 ‘웅이 이야기’가 부산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내려갔다. 거의 자포자기하고 있던 그는 그곳에서 산골소년이 그림을 그리러 떠나는 내용의 영화 ‘더 픽처스’를 보고 그제서야 영감을 받았다. 열흘 만에 ‘선동’을 완성했다.
두 사람은 일부러 작품에 대한 의견을 전혀 나누지 않았었다. 극본은 극본대로 쓰고, 연출은 극본의 형태를 바꿔 ‘트랜스폼’을 시도할 생각이다. 어머니는 “함께 작업하지만 예술가로서 완벽한 독립과 대립이 가장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넉달 가까이 기다리면서 어머니와 별개로 김홍도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나갔던 아들은 “김홍도를 그저 풍속화가로만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 뭔가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교감하는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청조·양정웅씨와 극단 ‘여행자’ 배우들
공식적으로 두사람이 함께 작품을 내놓는 것은 2005년 ‘소풍’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지만 사실 이들의 예술적 교감은 39년째다. 1968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한 어머니는 그해 12월24일 만삭의 몸으로 성당에서 연극을 연출했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산통을 느꼈다. 3년 전 작고한 아버지 역시 6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였다. 어머니는 소설가 황석영이 차나 한잔 마시자고 해서 나간 자리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물질의 빈곤함을 부부는 예술로 채워 아이들을 길렀다. 아들은 “집엔 늘 책과 그림이 있었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부모님의 글벗들이 자주 오셨다. 부족한 게 없이 마냥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산에서 넘어져 옷을 잔뜩 더럽히고 들어온 아들을 “잘 놀았다”며 칭찬한 부부였다. 아버지는 출판사를 다니며 책을 만들었고 어머니와 아들은 81년 극단을 창단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전동타자기를 저당잡혀야 했고 냉장고는 수시로 비었지만 낮에는 아들 친구들이, 밤에는 부모님의 친구들이 집을 채웠다. 어머니는 “뭘 하라고 바란 것 없이 서로 인생을 열어두고 같이 한덩어리로 굴러다녔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거의 매일 연습에 나오고 있다. 아들은 “어머니 덕분에 극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며 “기댈 곳이 있어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극단 배우들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다. “사실 정웅이를 보면서 김홍도를 보고 김홍도를 보면서 정웅이를 봐요. 김홍도는 화구를 지고 눈에 보이는 길이든 아니든 자신의 세계를 믿고 떠났잖아요. 아들과 지금 연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김홍도가 지금 여기 있구나, 정말 가고 싶은 길을 찾아서 묵묵히 떠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어머니는 “우린 서로에게 집기둥 같은 존재”라고 했다. “집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있잖아요. 간섭 안하고 그냥 거기 있어주는 거죠. 그러면서도 서로를 받쳐주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집에 꽃과 생선회를 사서 들어간다고 했다. 이날은 또 한명의 예술적 동지이자 모자의 첫번째 친구였던 아버지 고(故) 양문길 작가의 기일이었다.
“정웅이 고등학교때 연극 끝나고 분장실로 만나러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 사람이 눈물을 보였죠. 아들이 미술하는 건 말렸는데 연극하다 낳은 아이라고 연극은 안 말렸어요. 우리가 연극한다고 돌아다녀도 묵묵히 지켜봐준 그런 사람이었죠….” 반달 눈을 지으며 내내 웃던 모자는 남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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