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욕망 상징 ‘빨강’의 역사[퍼펙트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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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10 09: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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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닐’은 연지벌레의 일종으로 선인장에 기생한다. 크기는 무당벌레의 3분의 1 정도로 아주 작고, 색깔은 은회색에서 흑적색까지 다양하다. 특히 암컷은 독특한 산(酸)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데, 이 산성물질은 또 다른 속성이 있다. 바로 강력한 ‘빨강 염료’라는 점이다.
‘퍼펙트 레드(원제 A Perfect Red)’는 이 코치닐과 빨강에 얽힌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이다. 증조부와 조부가 염색업자였다는 저자는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알려지게 된 코치닐에 얽힌 400년간의 욕망과 경쟁, 제국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훑어나가면서 이 작은 벌레가 어떻게 세계 역사를 움직였는지를 밝혀냈다.
책은 우선 빨강의 문화사적 의미를 추적한다. 빨강은 고대부터 신성한 색으로 높은 신분과 권력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인 ‘코치나티’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빨강은 색을 내기 어렵고 비싸다는 이유로 부유한 기득권층의 소유물이었다. 직물산업이 크게 성장한 르네상스 시대, 빨강에 대한 욕망은 높아갔지만 이를 충족시켜주는 염료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16세기 초반 스페인이 아즈테카 제국을 정복하면서 알려지게 된 코치닐은 매혹적인 염료였다. 유럽인들이 지금까지 보았던 것 가운데 ‘완벽한 빨강’에 가장 가까웠고, 색도 오래도록 바래지 않았다. 코치닐은 곧바로 신대륙에서 은 다음으로 값비싼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코치닐을 찾고, 지키고, 빼앗아오기 위한 온갖 음모와 방어전이 펼쳐졌다.
스페인은 외국인이 코치닐을 몰래 가지고 나갈 경우 사형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다. 스페인이 코치닐의 생산을 독점한 탓에 그 재료가 조그마한 벌레라는 사실은 200년 가까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코치닐을 얻기 위해 스페인 배를 약탈했고, 제조 비법을 알기 위해 스파이까지 보냈다. 책은 이 ‘완벽한 빨강’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왕과 지배자, 원주민, 염색업자, 화학자, 해적, 스파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또 하나의 역사를 직조한다.
코치닐은 19세기 후반 합성염료의 개발로 결정타를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최근 천연 제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되살아났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빨강의 문화사’를 다시 서술한다. 합성염료가 발명되자 상류 계급 사람들은 색을 싸고 천한 것으로 만들었다. 20세기 들어 선명한 색은 특권이나 부와의 연관이 끊어지면서 위험하고, 미심쩍으며, 심지어 우둔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특히 빨강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쇠퇴 일로를 걸었다. 지나치게 선명한 빨강을 입는 것은 천박하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 됐다. 저자는 그러나 빨강이 더 이상 호사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이 선택하는 색이라고 강조한다. 성공한 미국 여성들이 선호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빨강은 “아주 강한 여자만 감당할 수 있는 색이 됐다”고도 한다. “코치닐의 시대가 끝났다 해도 빨강은 여전히 우리의 피 안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제시한다. 거대한 역사의 움직임 뒤에 숨어있는 염색업과 색깔을 재발견해낸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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