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누구나 푸코처럼 역사를 쓸 수 있다”[미셸 푸코 해설서 펴낸 이영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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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05 09: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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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기 구조주의의 대표주자 미셸 푸코가 국내에 소개됐다. 그의 이름은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회자됐지만 대중이 그의 사상을 직접 접하기는 어려웠다. ‘말과 사물’ ‘광기의 역사’ 등을 빼고는 그의 저작물 대부분이 한창 푸코 바람이 불고 난 뒤에야 번역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번역된 푸코의 책은 모두 11권.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 등 그의 주요 저작물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에야 번역됐다. 국내저자에 의해 쓰인 푸코에 대한 해설서는 드문 형편이다. 이영남씨(40)가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푸른역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서강대에서 한국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취득한 그가 푸코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그 역시 9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고 학교에 다녔지만, 이를 역사연구에 접목시킬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푸코를 다시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논문주제가 효율성이었습니다. 효율은 한국 근대화 이해를 위한 포인트이에요. 푸코를 접하면서 한국사회의 효율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저자 자신도 말하지만 이 책은 푸코에 대한 전기나 평전도 아니요, 푸코 입문서도 아니다. 책은 역사가의 시각에서 본 푸코의 삶과 사유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푸코가 실존적 고민을 실증주의적 역사연구방법론을 취해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 학자임을 내내 강조한다.
“근대 이후 학자들은 자기자신과 학문을 구분했습니다. 푸코는 10대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고 모멸감을 느끼면서, 자기가 처한 상황조차 이해시킬 수 없는 학문에 대해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죠.”
푸코는 알다시피 근대기에 규율적인 절차·제도 등이 인간의 신체를 길들여 근대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등은 바로 사회적 소수자인 푸코의 처지에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는 것이다.
“저는 푸코를 보면서 자신의 삶에서 보편적인 역사를 이끌어냈다는 점, 실존적 삶과 역사연구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도권의 역사에서는 개인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예요. 한국사연구사를 살펴봐도 국가와 사회, 집단의 모습은 보이지만 개인의 역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의 역사서술을 제도권 역사가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자들은 대중화라는 관점에서 그저 역사를 던져주고 대중은 그저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얕은 대중의 역사인식을 개선하고 ‘모든 사람이 역사가’라는 역사학의 명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역사(개인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개인사란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죠. 개인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모순이나 고민을 해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들이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이런 영역도 공적인 세계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바로 푸코처럼요. 인간은 누구나 지적인 욕구가 있어서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자기 역사를 쓰고 남에게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일러서 저는 임상역사가라 부르고 있어요.”
해서 현재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인 그는 작은 실험을 하고 있다. 주말이면 충남 홍성에 내려가 풀무농업학교에서 인문주의자 농부들과 함께 ‘임상역사가 워크숍’을 열고 있는 것. “개인의 삶을 역사화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중입니다. 대학원 세미나보다도 이분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바로 푸코가 실천했던 한번의 저항이 아니라 무한한 저항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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