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펑크의 진화 '잡놈들 송가'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2.03 09:13:15
  • 조회: 520
>>노 브레인(No Brain) ‘청년 폭도맹진가’

노브레인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두말없이 이 앨범을 골라야 한다. 한국 펑크가 낳은 공전절후의 명반을 꼽으라 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단 한 장을 꼽으라면 역시 이 앨범을 집을 수밖에 없다. 노 브레인의 데뷔작 ‘청년폭도맹진가’는 그런 앨범이다.
노 브레인은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 강남권에서 기타 신동 소리를 들었던 차승우를 중심으로, 마산에서 혈혈단신 상경한 이성우가 만나 결성한 밴드다. 초기에는 3코드 펑크를 시도했던 그들은 차츰 스카 펑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위퍼와의 조인트 앨범이었던 ‘Our Nation 2’, 차승우 군입대 전 제작했던 EP ‘청춘 98’을 통해 스카 펑크와 트로트를 결합한 ‘조선 펑크’라는 특유의 스타일로 발전해간다. 차승우가 제대한 2000년 발표한 이 앨범을 통해 노 브레인의 조선 펑크는 완성됐다. 그리고 한국 펑크가 정점에 올랐던 순간이었다. ‘청년폭도맹진가’는 노 브레인을 크라잉 넛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 펑크의 맹주로 올려놓았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펑크에 대한 기존 음악계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연주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며 작곡 실력도 형편없는 아마추어 음악이었다. 그러나 ‘청년폭도맹진가’에서 노 브레인은 그런 선입견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날이 저문다’의 위악적 외침부터 ‘청춘은 불꽃이어라’의 구수한 스윙에 이르기까지, 노래의 방향이 요구하는 지점을 다채로운 목소리로 소화해내는 이성우는 홍대 펑크의 아이콘이 될 만한 자격을 충분히 수행했다.
지미 헨드릭스를 카피하며 음악을 시작했던 차승우는 단순한 ‘배킹’에서부터 ‘필로 충만한 애드리브’까지, 모든 곳에서 발군의 기타 실력을 선보인다. 20대 초반다운 혈기와 20대 초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관록이 동시에 빛난다.
그러나 이 앨범의 의미는 연주나 사운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청년폭도맹진가’는 한국 인디 신에서 최초로, 그리고 민중가요 진영 바깥에서 처음으로 배태된 메시지와 음악이 일체가 된 작품이다. ‘청년폭도맹진가’ ‘십대정치’ 같은 노래에서는 어느 민가보다 직설적이고 서슬퍼런 저항정신이 피를 튀긴다. ‘98년 서울’은 초기 인디 신에 모여들었던 먹물들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다. ‘잡놈 패거리’ ‘성난 젊음’은 당시의 라이브 클럽에 모이던 펑크 키드들을 향한 연대의 선언이다. 하루아침에 집이 철거당한 차승우의 고등학교 친구를 위해 만들었던 ‘이 땅 어디엔들’은 음악과 메시지가 만나 이뤄지는 감동의 결정판이다. “세상이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있더군”이란 가사에 이어 나오는 ‘아, 대한민국’의 멜로디는 아이러니를 자아내며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은 교실에서, 거리에서, 군대에서, 병원에서 만들어졌다. 군대에서 본 독립군가 악보에서 영감을 받았던 ‘청년폭도맹진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작곡한 ‘성난 젊음’ 등이 그런 노래다.
‘잡놈패거리’ ‘98년 서울’ ‘십대정치’ 등은 밴드 결성 초기의 대표곡이다. 요란한 차림에 늘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받아야 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념과 학습이 아닌, 삶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잡놈들의 송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아니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나올 수 없는 음악이었다. 보편성과 지역성이 완벽하게 녹아든, 참된 의미에서의 한국적 록은 이 앨범을 통해 몇 단계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
두번째 앨범 ‘비바! 노 브레인’을 끝으로 밴드의 리더이자 브레인이었던 차승우는 탈퇴했다. 지금 노 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로 록 스타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 패거리”라고 선언하며 “다 죽여버려!”라고 선동하던 100%의 펑크밴드는 사라졌다. ‘청년폭도맹진가’는 쇼 비즈니스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던, 그러나 그 일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던 펑크 복서의 기록지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그렇게 멋진 밴드가 없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