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좌절했지만 죽지않은 ‘개혁의 道’[정찬주 ‘하늘의 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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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1.29 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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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찬주씨(53)가 조선 연산군과 중종 시대,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로 이어지는 사림(士林)의 수난사를 담은 장편역사소설 ‘하늘의 도’(3권·뿔)를 발표했다.
1권 ‘천도가 무너진 땅’에서는 연산주의 포악한 정치와 음탕한 생활로 말미암은 사림들의 저항과 잔혹한 양대 사화의 역사가 펼쳐지고, 2권 ‘깨어나는 청류사림’은 연산주를 폐위시켜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정반정의 과정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 마지막 3권 ‘지극한 정치를 펴다’는 중종이 권신과 간신들 사이에서 왕권을 바로세우지 못하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이 왕도정치를 제창하며 정계에 진출해 개혁의지를 실현하다가 실패하는 내용이다.
“원래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은 하루 이야기를 경장편으로 쓸 계획이었는데 7년 전쯤 전남 화순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점차 구상이 커져 연산군과 중종 시대를 전부 다루게 됐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화순은 조광조가 귀양갔던 유배지이고, 그의 산책길에는 사약을 받고 죽은 조광조가 임시로 묻혔던 가묘가 있다. 더구나 화순 인근은 조광조의 개혁에 동참했던 양팽손·박상·최산두·윤구·유성춘 등 호남 사림과 정여해·송흠·최부 등 호남 명현들의 유적이 산재해 있어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한 곳이다.
“조광조는 역사가 필연적으로 탄생시킨 인물이자 사림의 한계를 드러낸 인물이었습니다. 사림이 소인과 군자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게 화를 자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맑음을 지향하면서도 탁함을 아울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요.”
정씨는 그러면서도 “개혁의 특성은 좌절하는 데 있다”며 “근본주의와 원칙에서 벗어나 굴절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면 당대에 실패하더라도 후세에 그 씨앗을 뿌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광조의 행동은 개혁의 신념과 진정성이 부족한 우리시대 정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광조의 등장은 ‘하늘의 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가장 촉망 받았던 조광조는 정국공신이 된 훈구파들이 정국을 주도하고 각종 특권을 독차지하면서 부정부패를 일삼던 시대에 34세의 늦은 나이로 관직에 입문한다.
당시 시대상황을 하늘의 도가 땅에 떨어진 위기와 혼란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유교적 이상정치를 조선의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함이었다.
그가 추구했던 지치(至治)는 수신제가를 이룬 뒤에 백성을 위해 지극한 정치를 펼친다는 유교의 이상으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신념을 가지고 수도승처럼 초지일관하면서 인간정신을 극점까지 끌어올리는 강개(慷慨)의 인간형을 보여준다. 작가는 “조광조로 인해 유교가 현세의 윤리도덕이 아닌 숭고한 종교임을 알았다”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조광조의 친구인 양팽손이 생원시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한 양반집에서 숙식의 대가로 그림을 그려주는데 그 그림이 안평대군을 배신했던 안견의 그림에 비교되자 자신의 그림을 구겨버리는 장면, 개혁 실패로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은 조광조가 사약 한 사발로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교살하려는 군사에게 임금의 명을 어기면 되겠느냐면서 사약 한 사발을 더 가져오라고 호통치는 장면 등은 사림들의 기개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역사를 소재로 끌어온 요즘 ‘뉴 웨이브’ 역사소설의 경향과 달리 ‘하늘의 도’는 사실(史實)에 충실하다. 조선왕조실록·연려실기술·대동야승이 주요 참고문헌이고, 사림들이 남긴 문집을 샅샅이 훑었다. 일기, 서간문, 과거급제 답안지 등이 들어 있는 문집은 그들의 교유관계나 정서를 생동감 있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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