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보내는 마음 받는 마음 사이 전하는 기쁨”[16년 경력 우편집배원 남윤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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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1.02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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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랑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세상살이에 찌들어 가슴이 사막처럼 황량해져도 푸른 가을 하늘은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떠올리게 한다. 떨리는 손으로 쓴 편지에 우표를 붙이고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던 마음조차 ‘박제’가 되어버린 듯한 요즘. 사랑도 이별도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전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리의 빨간 우체통은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고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인공처럼 낭만적이진 않아도 우편집배원들은 아침부터 골목을 누빈다.
16년 경력의 여성 우편집배원 남윤희씨(47)는 오전 7시에 출근해 하루종일 움직이다가 오후 8시쯤 퇴근하는 고된 생활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만족감이 대단하다. 남매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자신의 일을 찾던 그는 신문에 실린 우편집배원 모집공고를 봤다. 고향은 충청북도이지만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는 서울 한복판에서 일하고 싶어 광화문우체국에 응시했고 주로 종로구 창신동 등 동대문시장 부근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 일할 때와 비교하면 우편물 종류도, 사람들의 표정도 정말 많이 변했죠. 예전엔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비롯, 연애편지나 문안편지, 그리고 선물을 담은 소포가 주종을 이뤘지만 요즘은 각종 금융권 청구서, 카탈로그, 우체국 택배 등으로 부피만 엄청나게 늘었어요. 사람들의 표정도 예전처럼 여유나 정이 없고 어두워졌고요.”
오전 7시에 출근하면 지난 밤 사이에 온 등기우편물을 다루는 특수계에 들러 분류작업을 하고 등기소포나 일반소포를 나눈다. 그때는 아무리 반가운 동료라도 인사를 나눌 여유가 없다. 자동분류기가 우편번호에 따라 우편물을 나누긴 하지만 크기가 각각 다른 편지, 카드, 책자나 우편번호를 제대로 쓰지 않은 우편물은 일일이 손으로 나눠야 한다. 마무리 작업을 한 우편물을 어깨에 멘 커다란 가방과 낡은 자전거가 아니라 빨간 오토바이의 박스에 옮긴 후 본격적인 배송 업무를 나선다.
2007년 9월말 현재 전국의 집배원은 1만5482명. ‘편지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우편집배원은 한가하겠다’란 생각은 오산이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인터넷 쇼핑몰도 늘어나 일감이 늘었다. 2000여통의 편지를 담던 가방에 4, 5개의 소포가 들어가면 꽉 차고 백화점, 홈쇼핑 등의 책자 부피도 만만치 않다. 특히 추석 등 택배나 소포가 많을 때는 파김치가 될 만큼 우편물의 양도, 부피도 많다. 남씨는 추석 무렵에 2㎏이 빠졌다고 쏙 들어간 배를 두드렸다. 그땐 너무 바빠 제때 밥도 못먹었단다.
“일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요. 우선 동료들이 너무 착해서 직장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죠. 또 제가 담당하는 곳은 재래시장 주변인데 아직도 정이 남아 있는 곳이에요. 제가 가면 고지서를 가져가도 반갑게 맞아 주시고, 식당에 들어가면 밥도 넉넉하게 주시고…. 2년 전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는 시장분들이 모두 에워싸서 교통이 막힐 정도였고 모두 병문안을 와주셔서 감동했어요.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고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남씨만이 아니라 이 삭막한 불신의 시대에도 우편집배원들에 대한 호감도는 높은 편이다. 외딴 섬이나 산골마을에는 우편집배원이 유일한 말벗이 되는 가구도 많고, 할머니가 혼자 살다가 가스 불 끄는 것을 깜빡 잊고 있다고 화재가 발생하기 직전 불을 꺼 위기를 넘기게 한 일, 도둑을 잡은 일, 폭우 속에서 30명의 인명을 구조한 집배원 등 우편집배원들은 소방수, 경찰, 119구조대 역할도 마다않는다. 또 평소에 낯선 곳에서 길을 몰라 헤맬 때 집배원은 최고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남씨는 “우리 집배원들은 365봉사대를 조직, 홀로 계신 어르신 돌보기, 장애인과 노약자 보살피기, 소년·소녀가장돕기, 시장 대신 보기 등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우정사업본부가 2002년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직원을 ‘우체국 사랑 나누미’로 위촉해 불우이웃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것도 사회봉사 활동의 일환이다.
물론 힘든 일도, 속상할 때도 많다. 무엇보다 우체통을 열었을 때 편지가 아니라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가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 또 우체국 택배가 늘어나면서 각종 냉동식품이나 보관하기 힘든 소포를 배달할 때 집이 비어서 몇번씩 오가다가 내용물이 상할 경우 우편집배원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도 있다. 법원에서 오는 우편물은 일부러 수취를 거부하는 이들도 많고 이혼소송을 한 이들의 경우 부부가 서로 안받으려고 해서 난감할 때도 있단다. 또 요즘은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에 거주자들의 이름도 수시로 바뀌는데 옛 거주자에게 배달된 우편물의 경우 ‘이사갔음’이란 메모만 적어줘도 일은 줄어든다. 지난 5월부터 주소 체계가 번지 중심에서 도로명 중심으로 바뀌어 무슨 동 몇번지가 아니라, 뱅도래미길 6, 새싹길 5 등으로 달라져 우편집배원들도 새 주소 익히고 외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국민이 우편물에 새 주소를 사용하는 비율도 아직 0.3%에 불과하다. 우편번호제도가 1970년에 도입되었을 때도 혼란을 겪다 20년 후에 정착되었으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볼 생각이란다.
“우린 그저 우편물만 나누는 게 아니라 정을 나누고, 세상을 알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서울 한복판에도 햇볕조차 들지 않는 쪽방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참 많아요. 그분들에겐 우리가 유일한 말벗이고 친구예요. 배달할 우편물이 없어도 시간나면 들러서 안부를 묻고 음료수라도 드리죠.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그분 표정을 보고 직업을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다니까요. 특히 저는 아줌마니까 다들 더 편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것 같아요.”
남씨는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데도 일요일엔 또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체력관리를 한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동료들을 위해서란다. 아파서 결근하면 자신의 일이 고스란히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은 다음날 나와서 처리하거나 집에서 해도 되지만 반드시 그날그날 처리해 나눠줘야 하는 우편물을 다른 동료들에게 떠맡기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매일 저녁 늦어서야 귀가하지만 남매는 바쁜 엄마 밑에서도 잘 자라주었다. 맏딸은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고, 아들은 군대에 갔다. 딸은 고등학생 시절에 우정사업국 행사 때 ‘우편집배원인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편지를 써서 남씨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군대에 간 아들과는 안부 편지를 나눈다.
‘엄마, 오늘 훈련받다 무심히 본 하늘에 핀 하얀 뭉게구름을 보면서 엄마 생각을 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들의 편지를 읽으며 남씨는 따스해지는 자신의 가슴처럼 온 세상이 사랑의 편지로 가득해지길 바란다. 비록 자신의 일은 더 늘어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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