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제2의 엄마 ‘조선족 이모’들, 제3의 혈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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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30 09: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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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파트 단지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줌마들의 대화 속에서는 낯선 단어와 억양이 적잖이 들려온다. 대여섯명이 모여 있으면 그중 서넛은 ‘조선족 이모’다. 맞벌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가사와 아이를 돌보는 조선족 여성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조선족 이모’ 없으면 한국 가정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과한 것이 아니다. 조선족 이모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말을 가르치며 함께 논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조선족 이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사는 맞벌이 주부 김모씨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급하게 보모를 구했다. 다행히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온 마음씨 좋은 조선족 이모를 맞이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1년이 되지 않은 조선족 이모는 한글 동화책을 읽지 못했다. 김씨는 “돌배기 아이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조선족 이모가 한글을 몰라 중국 동화책을 사다가 읽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언어 발달은 한국어로 하든, 중국어로 하든 별 상관없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아가 골(머리)이 좋아요’ ‘채를 다까(볶아서) 먹일까요?’ ‘공작(출근)하는 길이라요’ 등 조선족 이모의 일상용어가 우리와 달라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족 이모들은 대부분 중국에 있는 자녀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낯선 땅을 찾은 만큼 학구열이 높다. 이 때문에 한국 가정에서도 조금이라도 교육을 담당하려고 애쓴다. 조선족 이모가 있는 가정의 거실 벽에는 한글 자음·모음과 같은 중국의 성모·운모 글자판이 붙어있다. 부모들 입장에서는 고맙다. 하지만 갈등도 생긴다.
홍콩계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송모씨는 직장 상사의 권유로 조선족 이모와 살고 있다. “한국 아줌마들은 되레 까다롭고 요구사항이 많아 오랫동안 식구로 있기 힘들다”는 조언을 들었다. 송씨 집의 이모는 옌볜(延邊) 출신으로 북한말씨를 쓴다. 덕분에 6살, 2살 난 아이들의 말투도 북한 억양에 가깝다.
말씨만 영향 받는 것이 아니다. 송씨는 “어느날 아주머니께서 아이와 대화하던 중에 ‘미국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서 밥 먹다가 깜짝 놀랐다”며 “아이가 선입견을 가질 수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은연중에 미국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이에게 전달된 것이다.
가장 고민되는 것은 역시 음식이다. 경기 고양시 풍동에 사는 맞벌이 아빠 유모씨는 “3살 된 아이가 엄마가 차려주는 한국식 밥상보다 조선족 이모가 해주는 중국 단둥식의 기름진 반찬을 더 맛있게 먹으며 최고의 음식인 줄 안다”고 말했다. 음식이 맞지 않아 불편을 겪는 부모와는 달리 아이는 조선족 이모가 해주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잘 먹는다. 조선족 이모는 “중국 고사리가 통통한 게 부드럽고 아주 맛있어요”하며 장을 봐온다. 유씨는 “생후 60일부터 조선족 이모가 아이를 키워왔는데, 음식과 언어 모두 한국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니어서 어정쩡한 상태”라고 말했다. 부모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중국 문화를 접해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섣불리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조선족 이모의 존재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조선족 이모를 둔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오랫동안만 계셔달라”다. 그만큼 조선족 이모들은 맞벌이 가정에 ‘제3의 혈육’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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