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보고 느끼는 대로 즐기기[미술, 세상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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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26 09:22:31
  • 조회: 302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눈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셸 프루스트의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을 시중에 수없이 나와 있는 미술사 책들과 나란히 놓는 건 결례가 될 것 같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의 예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책은 미술사 책이 아니다.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 않을 뿐더러 미술 작품이나 미술가에 치중하지도 않는다. 이 책이 주목하는 건 ‘보는 행위(Seeing)’와 그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이감(Wonder)’이다. 본다는 것의 의미가 어떠했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았기에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가 초점이다. 책의 원제가 ‘경이로움의 예술(Art of Wonder): 보는 행위의 역사(A History of Seeing)’인 이유다.
영국의 미술사가이자 큐레이터인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구별되지 않던 시절에 사람들이 주위 세계를 보고 느낀 경이감을 표현한 것이 예술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예술가란 이같은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이같은 생각을 토대로 별, 세계관, 태양, 달, 탄생, 죽음, 신 등의 주제를 통해 인류가 자연과 세계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미술로 표현했는지 살폈다. 그의 탐색은 유럽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등 지역과 시대를 넘나들어 문화인류학서 같은 느낌마저 준다.
저자는 특히 “고대 문화의 미술과 건축물은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표현물”이라고 단정한다. 예컨대 피라미드, 솔즈베리 성당, 스톤 헨지, 타지마할 등 신성한 건축물의 기하학적 배치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삼차원적 추축’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멕시코의 테오티와칸도 세계의 중심에 지어진 신들이 지상에 내려온 지점, 즉 지상에 구현된 천상세계라는 생각이 깃든 곳이다.
‘경이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암흑시대’라고 하는 중세의 미술은 “찬란한 빛의 계시”였다. 모자이크와 스테인드 글라스는 세상에 비친 신의 빛을 표현하려는 과정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감을 표현하기 위해 ‘스푸마토 기법(sfumato, 사물의 윤곽을 마치 안개에 싸인 것처럼 없애거나 연하게 하는 기법)’을 창안했다.
이처럼 책은 ‘보는 행위’와 그로 인한 ‘경이감’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강조한다. 고대 인류에게는 본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신비였다. 그들에게 본다는 것은 세계와 소통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굉장한 선물이며, 이 덕분에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사물들 또한 경이롭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뭔가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저자는 예술을 즐기고 이해하기 위해 예술적 스타일이나 학파나 기법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로지 주위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된다. 바로 몇 세기 전까지 인류가 세상과 자연, 신에게 보내던 그 순수하고 경이로움에 찬 눈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풍부한 도판과 저자가 직접 그린 수채화 삽화가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흔한 미술 교양서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속에 담긴 저자의 공력이 만만치 않다. 영국 작가 클럽이 우수한 예술 저작 분야에 수여하는 ‘배니스터 플레처 상’을 받았다. 김병화 옮김.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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