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그들은 왜 알래스카에 몸과 마음을 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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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23 09: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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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살 소년 호시노 미치오가 알래스카 북부 쉬스마레프 마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71년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금이 간 얼음판처럼 보이는 북극해의 작은 마을이었다. 소년은 에스키모집에서 살았다. 2주만 있다 갈 생각이었는데, 하루만 더, 이틀만 더 하더니 3개월이 됐다.
5년 뒤 미치오는 다시 알래스카를 찾았다. 카메라를 들고서. 알래스카 중부 페어뱅크스 대학에서 야생동물을 공부하고, 무스며 카리부의 사진을 찍었다.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얼음에 북극곰이 발자국을 남기는 북쪽 끝부터, 대륙에 흘러내린 듯 붙어 있는 남쪽 끝 알류샨 열도의 작은 섬들까지. 이끼 낀 채 삭아내리는 인디언들의 토템폴을 찍고, 밤하늘에서 춤을 추는 오로라를 찍었다. 그가 다닌 페어뱅크스 대학 박물관에는 지금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스스로 에스키모가 되어 살고자 했던 사람은 호시노 미치오만이 아니었다. 하이모 코스는 알래스카 국립 북극야생동물보호지구에 사는 7명의 덫사냥꾼 중 한 명이다. 74년 알래스카에 왔다. 황무지에 나무로 집을 짓고, 여우와 순록을 잡아먹고 산다. 중장비 기사이던 리처드 프뤼네케는 67년 건너와 오두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 여성 비행사 가운데 한 명이던 셀리아 헌터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몰고 알래스카로 온 뒤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왜 알래스카에 몸과 마음을 묻었을까.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빙하는 멀미가 날 만큼 이어졌고, 바다에는 빙산이 떠 있었다. 멀리서 본 숲은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의 뾰족한 침엽수림 타이가였는데, 조금 걸어 들어가니 두껍게 이끼가 깔린 ‘스머프 마을’이었다. 페어뱅크스 대학에서는 멀리 데날리(맥킨리)의 반짝이는 이마가 보였다. 데날리 앞까지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와 뾰족한 가문비나무가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알래스카는 아름다웠다. 대자연이,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그대로 당당히 남아있다.
강변엔 마른 나무의 흰 몸뚱이들이 쌓여 있었다. 나무는 얼음 위를 얄팍하게 덮은 흙 위에 씨를 내리고, 자랐다가 뿌리째 뽑혀 강물을 따라 흘러왔을 것이다. 나무는 여행을 계속해 북극해의 차가운 바다를 건너 어느 해안가에 닿고, 털이 흰 북극여우의 영역이 되었다가, 여우를 잡은 에스키모의 사냥 표식이 되었다가, 그리고 언젠가는 삭고 닳아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이다. 생물학자 윌리엄 프루이트는 알래스카 대자연의 순환을 ‘여행하는 나무’로 이야기했다. 곰에게 습격당해 세상을 떠난 호시노 미치오가 언젠가 자신의 사진에 덧붙였던 말. ‘여기에는 야생사진이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삶과 죽음과 사랑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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