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비극은 삶·인간에 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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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22 09: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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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비극 연구서 낸 임철규 교수

서구 철학이 그리스 철학에 그 뿌리를 두었듯, 서구문학의 원류 역시 그리스 비극에 있다. 많은 고전학자, 문학 연구자들이 문학 최고의 형식을 대표하는 비극 중 최고의 작품으로 그리스 비극을 꼽는다.
“삶과 인간을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비극 작품입니다. 비단 문학의 한 장르로서뿐 아니라 허먼 멜빌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처럼 비극 정신을 이어받은 문학작품들은 인간의 삶을 가장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최근 그리스 비극에 관한 종합연구서인 ‘그리스 비극: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한길사)를 발표한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68)의 말이다. 호메로스 이후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총 16편을 다룬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는 아니다. 오히려 영문학이나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연구자, 문학비평가들을 독자로 삼고 있다.
“문학을 연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리스 비극 연구에 뛰어들고 싶어하지만 작품의 양이나 작품이 다루는 폭넓고 깊은 주제 때문에 누구나 쉽게 연구에 뛰어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 전체를 넓게, 깊이있게 다룬 책도 드문 상태고요. 저는 이 책을 통해 그리스 비극 전체를 깊이 있게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임교수와 그리스 비극의 인연은 40여년 전 시작됐다. 은사인 고 고병려 교수로부터 직접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미국 유학 시절 그리스 비극으로 학위논문을 썼다. 정년을 맞이하기 몇 해 전부터 ‘그리스 비극’ 과목을 강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준비하게 됐다는 임교수는 지난 두어 해 동안 집필을 위해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연세대 도서관 귀중본 열람실 한 쪽에 마련된 작업실보다 경남 김해의 한 공공도서관이 임교수에게는 더욱 편한 집필실이 되어주었다. 아는 사람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오히려 더 수월하게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임교수는 묵직한 ‘그리스 비극’을 펼쳐 보이면서 모두 새로 집필했으며 올해 나온 최신 연구물까지 섭렵해 책을 썼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만큼 성실하게 연구와 집필에 임했다는 뜻이다. 논문 외에 ‘글쓰기 외도’를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문학작품 연구에 열정을 다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태도다. ‘안티고네’에서는 헤겔로부터 시작해 루스 이리가라이, 주디스 버틀러, 장 아누이 등의 분석을 종합했고 새로운 분석도 담았다.
특히 ‘오레스테이아’에서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와 아가멤논의 정부 카산드라, 두 여인에 대한 해석이 남다르다. 그는 두 여인을 강자들에게 희생된 약한 존재로 규정하고 이들의 절망에 찬 울부짖음이야말로 진정한 역사라고 쓰고 있다.
이로부터 문학은 궁극적으로 ‘애도의 표현’이라는 그의 정의가 도출된다. 책 머릿글에서 그는 “위대한 문학이란,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망각 속에 묻혀 있는 숱한 인간들을 역사 속으로 불러내어, 그들을 다시 ‘기억’해주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고통과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를 지내주는 애도의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 카타르시스는 없습니다. 다만 종교가 이를 대신해주려 할 뿐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니체식으로 표현하면 형이상학적 위안을 준다고 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저 비극 작품을 통해 슬픔을 공유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노교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신은 사라지고 도처에 비극이 만연한데도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망각하는 현대인들이 비극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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