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암세포와 친구처럼 지내요”[유방암 환우모임 ‘비너스’ 의 고경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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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16 09:03:47
  • 조회: 1684
여성에게 ‘가슴’은 그저 몸의 한 부분이 아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는 모성의 역할 외에도 여성적인 매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곳이다. 그래서 대부분 가슴 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암에 비해 몸과 마음의 고통이 더 크다.
10월은 유방암 인식의 달. 2000년에 발병한 유방암 환자는 5401명이었으나 2004년에는 9667명으로 늘었다. 4년 만에 약 2배나 증가한 셈이다. 또 지난 5년간 한국의 유방암 발병률은 세계 평균의 20배에 달하는 데다 최근 연간 발생 환자 수는 1만명을 넘어섰다. 유방암 환자들은 암 자체에서 오는 신체적인 고통 외에도 여성의 상징인 가슴을 잃은 아픔으로 2중의 고통을 겪는다. 최근 한국유방암학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의 73%가 치료를 위한 가슴 절제를 고유의 여성성 상실로 인식했고, 86%가 가슴 상실을 장애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언제 암이 재발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환자를 힘들게 한다. 조사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 10명 중 8명이 재발 공포로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의 암 통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방암은 이렇게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조기발견만 하면 95% 이상의 높은 치유율을 보인다. 10월에 접어들면서 유방암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기 위해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세계의 대표적 건축물은 핑크빛 조명으로 물들여진다. 10월 한 달만이라도 유방암 자기진단이나 정밀검사 등을 통해 몸을 돌보라는 메시지다.
오늘의 주인공 고경자씨(50·사진)는 2005년에 유방암 2기로 판정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세련된 호피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나타난 고경자씨는 “유방암에 걸린 후 더 밝고 즐겁게 산다”고 했다. 그는 현재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에서 활동하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다른 환자들을 위한 상담 등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10월은 유방암 관련 행사가 많아 가장 분주한 달이기도 하다.
“2005년 3월에 샤워를 하다가 가슴에 골프공 만한 멍울이 만져졌어요. 동네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1주일 후에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유방암인 것 같다고, 종합병원에 가보래요. 곧바로 서울대 노동영 교수를 찾아갔는데 암세포의 크기가 커서 가슴 절제수술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암이란 사실보다 가슴을 절제해야 한다는 게 더 충격이었죠.”
다행히 다른 곳에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고 위치도 좋아 전체가 아니라 부분절제 수술을 했다. 그후 38회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쪼그라든 가슴, 자고 일어나면 숭덩숭덩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자신의 몸과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유방암 환자들이 암보다 우울증으로 더 고통을 받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유방암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싫었고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탄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어서 ‘오늘까지만 울자’ 하고 샤워기 틀어 놓고 펑펑 울었어요. 그 다음부턴 안 울어요. 오히려 집안에 거울을 더 많이 걸어뒀어요. 변한 내 모습에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그때 내가 나를 피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뒤짱구여서 두상이 흉하진 않더군요. 도올 김용옥 선생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 춘자도 머리를 빡빡 깎아서 나도 동참한다고 생각했죠. (웃음) 머리를 가리는 두건도 색색가지 천을 끊어다 직접 만들어서 옷 색깔에 맞춰 썼어요. 다른 환우들이 예쁘다고 하면 나눠주기도 했죠. 항암치료를 하는 것도 ‘내가 언제 이렇게 훌륭한 의사들을 자주 보겠냐’며 기쁘게 다녔어요.”
치료 후가 수술보다 더 고통스러웠단다. 재발에 대한 공포, 또 의료진의 보호나 도움없이 혼자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치료해준 의사들이 고맙고 그 지긋지긋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이겨낸 자신이 대견했다. ‘또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언제 또 아플지 모르니 매일 감사하며 살자’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생각을 바꾸니 행동이 달라지고 삶도 변했다. 고씨는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남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유방암 수술 후 도시락을 5개씩 싸들고 동네 독거노인들을 찾아갔다. 매일 식사를 챙겨드리고 말벗도 돼 주었다. 또 투병기간 동안 열심히 컴퓨터를 배워서 음악과 사진 올리는 법을 배운 후, 유방암 환자들의 홈페이지에 글과 음악을 올렸더니 ‘편집담당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유방암 환우들은 대부분 중년이어서 인터넷과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한다. 고씨는 “글과 음악을 올리면 ‘고맙다’는 댓글이 많이 올라온다”며 “나도 팬들이 꽤 많다”고 즐거워 한다. 요즘엔 요가도 배우고 장구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처음부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예전엔 매사 철저하고 집착하는 완벽주의자였죠.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옷을 벗고 거울을 봤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머리카락은 물론 온몸의 털이 다 빠지고 피부도, 손발톱도 까맣게 변하고 가슴은 쪼그라들고….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같이 치료를 받던 환우들이 백혈병 등 후유증이나 다른 암에 걸려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죠. 어제 만났는데 오늘 죽었다는 전화를 받으면 ‘나도 곧 죽는 게 아닐까’란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어요. 하지만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건 없어요.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바꾼 겁니다.”
암보험도 들지 않아 치료비 때문에 집도 줄여야 했다. 하지만 고씨는 얻은 것이 더욱 많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 땐 항상 뭔가 부족하고 더 채우려고 아등바등했지만 이젠 과거의 반도 안되는 크기의 집에서 더 편안하고 풍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유방암에 걸려 외모도, 성격도 변해가는 아내와 엄마를 동요하지 않고 깊은 사랑으로 감싸준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 더욱 커졌다. 돈이든 마음이든 자신을 도와준 친지들에 대한 감사함도 그를 지켜주는 힘이다.
“한가위는 아니지만 매일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고 기도해요. 암세포에게 ‘내 몸에서 나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더 이상 커지지 말고 그대로 있어줘’라고 부탁하죠. 소망도 소박해요. 제가 찜질방 가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우리 아들들이 장가가서 손자랑 같이 찜질방에 올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찜질방에서 손자들 땀 닦아주고 삶은 계란이랑 식혜 먹여주는 게 꿈이에요. 그 꿈이 이뤄지는 날까지 항상 감사하고 즐겁게 살려고 해요.”
그에게 암세포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선생이고 평생 더불어 가야 할 친구”란다. 오늘도 고씨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유방암도 얼마든지 즐겁게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다른 환우들에게 전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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