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묘한 성취감에 중독 정치를 즐기게 됐죠”[국회의원 보좌관 정주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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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11 0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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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원회관내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쌓인 각종 자료 사이에서 정주영 보좌관(29)은 한 손으론 전화를 받으면서 다른 한 손으론 메모를 하고 있다. 포스트잇으로 벽면을 도배한 ‘오늘의 할 일’을 보니 박의원 강연 요청 시간 조정, 인터뷰 날짜 확정, 이명박 후보 정강·정책 연설 준비, 문화재청·영화진흥위원회, 국립박물관에 국감 자료 요청 등 끝도 없다.
“의원님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비서 역할부터 피감 기관으로부터 자료를 찾고 검증하는 검사 역할, 그리고 정책자료집을 만드는 출판사 일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해요. 특히 국정감사 몇달 전부터 끝날 때까지 따로 출퇴근 시간이 없죠. 전 우리 의원실에서 가장 미미한 일을 하는 편인데도 이 정도예요. 선배 보좌관들은 정말 전문가들이시고 비서일을 하는 분은 6개국어에 능통한 실력파이니 전 부지런히라도 해야죠.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얼굴이 누렇게 뜨기 시작해서 하얀 눈이 쌓일 때는 하얗게 질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농담만은 아니랍니다.”
정씨는 정치학도도 아니고 국회의원 지망생도 아니다. 이화여대에서 특수교육학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는 관광학을 전공하며 장애인 가족의 문화여가 생활에 관심을 두었다. 장애아를 둔 가족, 특히 부모들에겐 단 하루만이라도 아이 돌보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여유로운 시간과 공연관람 등의 문화생활이 절실해서 그와 관련한 문화정책과 사회복지 쪽 일을 하려고 했다. 복지재단 취업을 앞두고 문화분야의 전문가인 박찬숙 의원이 보좌관을 모집한다기에 ‘잠시 경험삼아 일해보자’며 살짝 발을 디뎠다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했죠. 놀고 먹는 일에만 관심있었거든요. 그런데 주말도 없고, 수시로 야근이고, 너무 피곤해서 그만 두려하면 묘한 성취감 때문에 조금만 더 견뎌보자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다시 국감 시즌인 가을이 오기 전에 그만둬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또 시간이 가고…. 도무지 차분히 고민해서 사표쓸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니까요.”
국감 땐 새벽 2, 3시에 퇴근해서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것은 기본. 때론 새벽 5시에 e메일로 자료를 보내 의원이 검토하게 한 후 오전 8시에 보충자료를 전하기도 한다. 한여름 내내 자료를 준비해도 입시를 앞둔 수험생처럼 항상 초조하기만 하단다. 국정감사 업무가 그저 요청한 자료를 분석하고 질의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문제 파악과 전문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단다.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수시로 질의 내용을 수정보완하고 보충 질의안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완벽주의자에 의정활동이 활발하기로 정평난 박의원은 국정감사 기간이 아닐 때는 한류열풍 등 각종 세미나를 열고 정책자료집을 발간한다. 세미나 기획에서 포스터 제작도 보좌관의 몫이다. 사표쓸 시간이 없을 정도의 노동강도이니 스물아홉 처녀의 풋풋하고 자유로운 생활은 꿈도 꾸기 어렵다.
“요즘 동안열풍이라는데 일에 찌들어 노안이 돼가요. 각종 모임은 물론 친구 결혼식에도 일 때문에 빠지니까 정상적인 인간관계도 허물어지죠. 남자친구도 자주 못만나니 떠나더군요. 집도 국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여의도로 옮겨서 일할 여건만 완벽히 갖춰졌죠.”
일 때문에 실연까지 했다면서도 정씨는 “그래도 의원님이 소개팅도 시켜주셨고 맛있는 것도 너무너무 많이 사주시는 등 복지후생은 완벽히 책임지신다”며 만족스러움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에 3~4 시간도 못 자게 혹사시키면서도 즐겁게 일하게 만드는 박의원의 정치력과 부하 장악력이 놀랍기만 하다.
신세대답게 힘들고 고달픈 일도 유머러스하게 말하지만 요즘 국회의원 보좌관은 시민단체의 의정평가가 본격화됨에 따라 전문직화되고 있다.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청문회 등이 도입되면서 점차 전문성이 강화된 보좌관이 늘어나 국회보좌관 임용 대상 546명 중에서 지난 6월까지 등록한 451명 가운데 박사학위 취득자가 22명, 박사과정 수료자가 24명이고 석사학위 취득자는 수두룩하다. 정씨는 박의원을 도와 한지장, 나전칠기장 등 전통공예인들에 대한 지원 관련 법안을 만든 일을 가장 보람있는 것으로 꼽는다. 전국을 다니며 전통공예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전문분야, 현재 활동, 열악한 환경 등을 동영상 자료로까지 만들었는데 법안제정 후 그분들이 직접 고맙다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올해 국감에서는 새로운 분야만이 아니라 지난해 지적 사안이 얼마나 잘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정정해서 국감이 1회성 행사가 아님을 보여줄 예정이다.
“저도 전에는 매스컴에서 매일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한심한 집단이다, 세금이 아깝다’ 등의 비난을 했어요. 오죽하면 담뱃갑에 ‘당신이 낸 담뱃값은 국회의원 세비에 쓰입니다’라고 쓰면 가장 확실한 금연효과가 있다고 하겠어요. 하지만 국회에서 일하면서 보니 정말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 보좌관들이 많아요. 특히 국정감사 때는 모두 밤샘작업을 하죠. 언제까지 보좌관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가장 최선을 다한 국회의원을 도와 가장 잘 협력한 보좌관팀에서 일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답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법안은 아니지만 자신이 흘린 땀과 노력으로 잘못된 일이 바로 잡아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는 정씨. 하지만 벌써부터 너무 일이 많아 ‘이번 국감만 마치면 떠나야지’란 생각을 한단다. 물론 박의원이 “정주영씨, 이번 자료 아주 잘 정리했어.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란 말에 달아날 생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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