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비싼 공연’ 소비하는 ‘껍데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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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10.09 09:12:36
  • 조회: 378
최근 무대공연을 둘러싸고 ‘티켓 가격’이 곧 ‘작품의 질’이고 ‘나의 문화수준’이란 기형적 공식이 생겨났다. 문화비평가 정윤수씨는 ‘고가 공연’을 부추기는 배경으로 문화적 허위의식을 꼽았다. “대형 공연장에서 화려한 공연을 ‘소비’하는 순간 자신이 마치 일류 문화 트렌트에 합류한 것으로 착각하는 허위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 그는 “공연작품에 대한 감동이나 이해와는 점점 멀어지고 소비만 하게 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싼 공연’이 문화적 스타일의 완성?
문화 ‘향유’가 아닌 ‘소비’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올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VIP석 가격은 25만원으로 뮤지컬 공연 중에서도 고가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괜찮다” “기대에 못미친다” 등으로 엇갈렸지만 공연마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성황을 이뤘다. 공연 관계자들조차 “환호성 치는 관객들이 작품을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다”며 “‘프랑스 뮤지컬’이란 간판에 뒤로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달 공연 관람비로 150만~200만원을 쓰는 싱글족 이씨(37)는 VIP석이나 적어도 로열석을 고집한다. 그는 “공연보기는 사치스러운 취미생활”이라며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공연을 즐기는 축에라도 끼지만 명품을 휘감고 VIP석에 앉은 사람들 중에 제대로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예술의전당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십만원짜리 VIP석이 비어 있거나 그 날의 연주 수준과는 무관하게 유명세만으로 낯뜨거운 기립박수가 코미디처럼 벌어진다.
클래식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고가의 티켓가격이 터무니 없이 책정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생활수준도 높아졌고 해외 유명 단체의 공연이 늘어나면서 고가공연이 생겨난 일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고가 공연이 늘어난 만큼 과거에 비해 무대 위 연주자들과 공연을 완성하는 관객의 수준이 따라 오르지 않은 게 문제”라고 평했다.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회, 대형 뮤지컬 등의 ‘고가 공연’은 과거엔 일반인들과 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연 물량이 늘어나고 TV광고, 기업문화마케팅 등이 계속되면서 대중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증폭된 관심과 달리 이들 공연에 접근은 쉽지 않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아날로그 공연’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당장 경제적인 문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런 괴리감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구사회의 경우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이 존재해 갈등이 해소될 여지가 많지만 우린 ‘모 아니면 도’ 식의 쏠림현상이 강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000원짜리 공연에 14만명 몰린 이유
고가 공연 시장이 팽창할수록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보고자 하는 잠재된 욕구 또한 만만치 않다.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마련한 ‘천원의 행복’ 공연에 쏠린 관심이 말해준다. 대극장에서 매달 한차례씩 관람료 1000원으로 클래식, 뮤지컬, 국악, 무용 등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지난 9개월간 14만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세종문화회관 사이트가 다운되고 업무가 마비됐을 정도다.
공연을 기획한 이창기 팀장은 “공연장 마당에서 이벤트성으로 잠깐 펼치는 공연들로는 사람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면서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한편의 작품을 감상하며 문화를 맛보게 하는 공익적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획일적인 문화마케팅도 앞으로는 다양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동안 생색내기용으로 고가 공연을 선호하며 “비싸야 잘 팔린다”는 공연계 제작 메커니즘 형성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뮤지컬제작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문화 후원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10만원 이하의 공연이나 국내 창작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거품의 중심에 기업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부터 시행된 기업의 문화접대비 손비처리 수혜도 일부 고가 공연에나 해당되는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공연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이 후원금만큼 고가의 티켓을 되가져가는 규모라도 커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 문화마케팅을 돕는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 이윤을 주는 VIP고객에게 문화마케팅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그나마 아직까지도 활발하지 않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충분히 커지면 다양한 형태의 문화마케팅이 개발된다”며 “중저가 공연이나 여성을 타깃으로 한 대학로 공연 등으로 관심이 옮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천필하모닉의 지휘자 임헌정 교수(서울대음대 작곡과)는 “문화예술은 ‘정신적 영양소’로 인간의 몸이나 사회가 균형이 깨지면 말썽이 생기듯 문화 향유와 소통에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과거 고급문화, 대중문화로 나뉘던 것이 요즘은 비싼 것과 비싸지 않은 공연으로 갈라지고 있다”며 “여기에서 벗어나 각자의 취향이 만들어지고 이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더이상 자기를 속이는 ‘껍데기 취향’에 좌우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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