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소년, 꿈이 커지다[다시 씌여지는 비행기의 역사·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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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9.17 09: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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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은 비행기의 해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행기와 가장 빠른 비행기가 함께 등장했다. 보잉사의 초대형 여객기 747기는 그해 2월 미국 시애틀 북부 보잉 비행장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한 번에 400명을 태울 수 있는 최초의 2층 비행기였다. 그 전의 어떤 비행기보다도 2배 이상 컸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은 항공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계단이었다.
유럽에서는 에어로스페이셜사(에어버스의 전신)가 주도해 제작한 콩코드가 첫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소리보다 빨리 나는 비행기. 콩코드의 속도는 ‘마하 2’였다. 콩코드는 8시간이 걸리던 런던과 뉴욕을 3시간30분 만에 주파했다. 종이학처럼 우아하게 꺾인 머리와 유선형의 날개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70년대 후반 서울 신월동이나 개화동. 김포공항 옆에 살던 소년들은 비행기를 보고 자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행기가 공항으로 돌아올 때마다 공을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던 소년들은 뛰며 손을 흔들었다. 747기는 ‘로버트 태권 브이’나 ‘마징가 제트’의 친구였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747 종이 모형을 팔았다. 한 반에 한 명쯤, 날아오는 모양만 보고도 747인지 707인지 구분하는 아이가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이국의 도시들은 비행기의 신규 취항지로 기억됐다. 비행기 노선도를 보면서 뉴욕과 파리가 어디 있는지 배웠고, 언젠가 인도로 날아가겠다는 꿈을 키웠다.
세월은 흘렀고, 아이들은 자랐으며, 비행기는 늘어났다. 하루 7만여대의 비행기가 전세계 4000여 공항에서 뜨고 내린다. 2002년 620여만명이던 국내·국제선 항공 출국자는 지난해 1023만여명으로 늘어났다. 4명 가운데 1명이 한 해 한 번 이상 비행기를 탄다. 호화 여행의 대명사이던 비행기는 ‘나는 호텔’에서 ‘나는 버스’가 됐다. 오히려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세기의 여객기 콩코드는 2003년 5월 파리~뉴욕 비행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단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는 콩코드의 신화는 2000년 7월 프랑스 파리 드골 공항에서 무너졌다. 활주로의 금속 조각이 타이어를 찢었고, 타이어 조각이 연료통을 쳤고, 불이 붙었다. 불붙은 채 활주로를 달려가던 콩코드는 결국 날지 못했다. 100여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사라짐, 혹은 조종(弔鐘)처럼 보였다.
항공의 역사를 쓴다면 1969년의 다음 장은 2007년, 올해로 시작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이 처음으로 정규 노선에 투입되고, 보잉사는 12년 만에 신형기 B787을 선보였다. A380이 최고급 서비스를 강조한 525석 대형기라면 B787은 연료 효율성을 강조한 250석 중형기다. 1969년 ‘규모’냐 ‘속도’냐를 놓고 겨룬 두 라이벌사의 경쟁이 38년을 뛰어넘어 다시 재연된 것이다.
지난 6일 A380이 시험비행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40여년 만에 등장한, 747을 넘어서는 대형 비행기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택받은’ 민간 체험비행단 20여명은 가슴을 누르며 트랩에 올랐다. 엔진 소리와 함께 A380의 육중한 기체가 물보라를 날리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공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그때의 소년들’이 입을 다물지도 않고 A380의 이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쪽으로 방향을 튼 비행기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비행기 역사의 새 장이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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