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아직, 그분들 고통 다 헤이라지 못해”치매노인 간병전문가 유희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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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9.10 08: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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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얼굴에 언제나 미소가 가시지 않는 유희인씨(54)는 촛불 켜진 생일 케이크 앞에 서있는 소녀 같다. 항상 즐겁고 기쁜 일만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지만 그는 각각 치매에 걸린 팔순의 시어머니와 구순 친정아버지를 10여 년간 모셨다. ‘당신에겐 천국, 가족에겐 지옥’이라는데 셋째 며느리에 둘째딸, 가족 서열 순으로도 그렇고 경제력으로도 치매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되련만 두 아들을 키우고 출판사 일을 하면서 치매부모를 10여 년간 모시다보니 ‘치매노인 간병 전문가’가 되었다. 자기 부모를 모신 것만으로도 부족(?)한지 요즘도 치매환자 가족모임의 상담은 물론 은성너싱홈 등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천성이 아니라 이왕 하는 일, 찡그리지 말고 하자고 생각했죠. 시어머니는 8년간, 친정아버지는 13년간 옆집에서 돌보다 치매가 된 후 2년 동안 모시다 이젠 모두 돌아가셨어요. 두 분을 모시며 겪은 일들은 내가 나를 정복하는 훈련 과정이었어요. 당시엔 죽고 싶고 돌아버릴 만큼 괴롭기도 했지만 지내고 보니 다 뜻과 의미가 있더군요.”
유희인씨의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는 모두 평범한 분들이 아니었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상당한 재력에 언변이 뛰어났던 시어머니는 첫째, 둘째 아들 집에서 머물다 늙고 병들어 셋째인 유씨 집에 온 것. 여든아홉에도 분홍색 매니큐어 바르기, 고급 호텔에서 커피 마시기 등 우아한 분위기를 즐기셨지만 남들은 물론 가족에 대해 욕을 퍼붓는 것이 취미셨다. 똥기저귀도 갈아드리고 갖은 시중을 다 들어드려도 조금만 섭섭하면 “나 죽을 때 널 꼭 데려갈거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는 걸 봐야겠다” “널 노인학대죄로 고소하고 기자회견을 해야겠다” 등등의 폭언과 심술을 부렸다. 하도 독설가여서 간병인들도 고개를 저으며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래도 허리 다쳐 누워계신 시어머니는 편했단다. 팔순에도 한겨울에 얼음물에 들어가는 등 체력을 자랑했던 아버지는 치매가 심해지자 행동이 난폭해지셔서 남들을 때리기도 하고, 길거리에 놓인 소파, 책장 등을 옮겨와 집도 엉망이 되고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단다.
“시어머니는 주로 말씀으로 절 괴롭히셨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버지는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가구 부수기, 안에서 문닫아 걸기, 새벽에도 나가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괴로웠어요. 솔직히 친정아버지가 마음으론 편했죠. 시어머니 때문에 속상할 때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성경 구절을 메모해 두었는데 꽤 많아요. 그런데 친정아버지는 만만해서인지 속상하면 화도 내고, 야단도 칠 수 있어선지 마음을 다스릴 성경 구절은 하나밖에 안 적었더군요.”
남들이 잘 때도 부모님이 대소변 못 가려 채워둔 기저귀 갈고, 목마를 때 물을 드리느라 10여 년간 숙면을 취한 적이 없는 게 힘들었다는 유희인씨. 그러나 가족들의 갈등이 더 고통스러웠단다. 일단 ‘가정은 편히 쉬고 즐거운 곳’이어야하는데 냄새 나고 심술 부리는 노인들이 있고 안주인은 간병하느라 지쳤으니 가족들이 집에 오기 싫어했다. 부모 간병에 나몰라라 하는 다른 형제 자매들의 무심함 때문에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독차지해야 하나”란 억울함을 느끼게 했다. 돌아가신 후에도 유산이나 부의금 분배 등 돈 다툼은 치매 어르신을 둔 어느 가정에서나 벌어지는 풍경이다. 유희인씨 역시 평소 효자인 척 하면서 정작 간병은 자신에게 떠넘긴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컸다.
“최인호 작가도 책에서 시간 없다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어머니의 늙고 죽음을 앞둔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더군요. 아름답던 어머니, 당당했던 아버지가 초라한 치매노인이 되어 자식은 물론 당신도 못 알아보는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이 양육은 물론 치매 부모의 간병까지 딸과 며느리 등 여성들이 도맡아야 하는 것은 부당하긴 해도 그래도 어르신들은 딸을 가장 편하게 느끼더군요. 특히 치매환자의 경우 이곳 저곳으로 옮기며 환경을 바꾸면 급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 집에서 지속적으로 간병하는 게 좋지만 간병 비용이나 격려의 말 등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죠. 그리고 똑같이 비용을 분담해 좋은 요양 시설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고요.”
매일 치매 부모의 투정과 간호에 시달려 잠들 때마다 “내일은 꼭 요양시설에 맡겨야지”라고 다짐해놓고도 또 아침이면 “오늘만 견뎌보자”면서 10여년을 버텼다는 유희인씨. 하지만 “그래도 내 고통만 생각했지 부모님들이 고통스러운 것은 다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치매 어르신과 좀더 평화롭게 지내려면 치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매 환자들도 자존심과 수치심 등 감정적인 측면은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말과 행동으로 그들을 배려하고 다독거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치매 노인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절실하다.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옛날 이야기라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엉뚱한 요구나 심술 궂은 욕설을 할 때는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 잠시 심호흡을 하면 화도 가라앉고 몇 분 후면 치매 노인은 자신이 한 말을 벌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치매의 가장 대표적 특징인 자꾸 밥을 달라는 요구에는 “아유, 방금 드셨잖아요”라고 타박하거나 거절하지 말고 아주 조금씩만 드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가장 좋은 약은 만져주고 안아주는 스킨십이란다.
하지만 치매노인 간병으로 효부나 효녀상을 받으면 뭐하나. ‘그들은 행복했고 나는 병들었다’며 우울증과 화병 등 각종 병으로 희생자가 되는 것이 사람 도리일까. 가족들이 고맙다고 감사패를 주거나 얼마의 돈을 준들 이미 병든 몸과 상처 난 마음은 회복되기 어렵다.
“내가 다소 무리하면 다른 사람이 편안해지긴 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해야 해요. 남들은 절대 내 사정을 몰라요. 그러니 남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 내가 해결책을 찾아야죠. 우선 스트레스는 그때 그때 풀어야 합니다. 모아두었다 여가시간에 풀지 말고 일과 중에 풀어야해요. 미련하게 혼자 참지 마세요. 즐거운 만남, 흥겨운 장소를 기를 쓰고 찾아다니는 노력이 절대 필요해요. 1주일에 하루라도 다른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맡기고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 병들거나 미치지 않는답니다. 나도 수시로 친구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가끔씩 여행도 다녔어요. 그 덕분에 견딜 수 있어 친구들에게 감사해요.”
유희인씨는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중년부터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중년이 되면서 적절한 취미생활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치매예방은 물론 잘 늙어가는 비결이라는 것.
“치매 부모를 모시는 것이 내게 주어진 숙제이자 복덩어리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그 숙제를 무사히 마쳤으니 다른 이들에게 내 경험을 나눠주고 도움이 되고 싶어요. 또 요즘은 지자체에서도 많은 정보를 주고 너싱홈부터 노인병원까지 돌봐줄 곳도 많으니 도움을 받으세요.”
충실하고 완벽하게 숙제를 다 해놓고 다른 사람 숙제도 도와주는 유희인씨. “한 권사님이 일단 육십세가 넘으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정상’일 때 더 많이 웃고 가족과 친구에게 잘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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