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책을 고치며 책을 깨닫다[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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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31 09:00:04
  • 조회: 372
누구에게나 소중한 책 한 권이 있을 게다. 인생의 지침이 되어준 책 말이다. 파리에 사는 소녀 소피에게는 식물도감이 그러했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본 나머지 소피의 식물도감 표지는 못쓰게 돼버렸고 책장은 너덜너덜해졌다. 새 식물도감을 살 수도 있지만 소피는 자신의 소중한 책을 고치고 싶었다.
사람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으면 되지만, 책이 파손되면 누구에게 가야 하는 걸까. 소피는 책을 들고 파리의 거리를 헤맸다. 그러자 거리에서 책을 파는 아저씨가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를리외르를 찾아가 보려무나.”
“를리외르가 누구지, 책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인가?”
를리외르 아저씨를 찾기 위한 소피의 탐색은 계속된다. 고색창연한 파리의 골목골목을 지나 결국 소피는 책을 고쳐주는 가게를 찾아낸다.
수채 물감으로 그린 50여쪽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한 책은 책을 만드는 장인, 를리외르에 관해 다루고 있다. 를리외르(relieur)는 프랑스어로 제본을 뜻하는 단어이다. 대량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를리외르 장인은 필사한 종이 묶음을 모아 꿰매 책을 만들고 내용에 걸맞은 표지를 만들어 붙였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승들이 필사와 제본을 담당했지만, 17세기 이후에는 왕립도서관 소속 를리외르 장인이 제본을 담당했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1500여명의 예술제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소피는 를리외르 장인에게 책수선을 부탁한다. 책은 를리외르 장인이 소피의 책을 제본하는 과정을 한 컷 한 컷 세심하게 묘사한다. 를리외르 장인은 오래돼서 너덜너덜해진 책을 낱장으로 분리한 뒤 새 실로 떠서 꿰매고 풀칠을 해서 말린다. 그리고는 책등을 망치로 두드려서 책이 잘 넘어가도록 한다. 표지로 쓸 가죽과 종이를 고르는 등 새로 책을 제본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 소피와 머리 희끗한 를리외르 아저씨는 서로 교감한다.
망가진 책이 시간을 초월해 아름다운 표지를 단 새책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동시에 파리의 뒷골목에서 외길을 걸어온 장인의 느릿한 인생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그림과 글에서 작가의 진한 애정이 묻어난다. 파리를 여행하는 도중 책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마지막 장인’의 긍지와 정열에 매료됐다는 작가는 파리의 아파트를 빌려 작업 과정 하나하나를 스케치하며 취재했다고 한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어린 독자들도 책을 아낀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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