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석굴도시 곳곳 전쟁의 상흔이[컬트 여행지 … 이란 캔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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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28 09: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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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사람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북극의 이글루에서 사는 에스키모도 있고, 아마존의 정글 속 나무 위에 사는 원주민들도 있다. 이란의 캔도번 사람들은 바위벽에 굴을 뚫어 만든 집에서 산다. 터키 카파토키아의 ‘짝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파토키아가 생소한 독자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카파토키아는 세계 최대의 암굴도시다. 외국군의 침입에 몸을 숨기기 위해 바위벽에 구멍을 뚫고 집을 만들었다. 초기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으로도 유명하다.
캔도번 마을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국경지대에 있다. 테헤란에서 이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하루종일 달려야 캔도번이란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흔히 이란하면 사막을 떠올리지만 국토는 비옥하다.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을은 초라했다. 집은 150여가구. 이란인들은 가끔 찾는 관광지라지만 외국인들은 거의 없다. 카메라를 메고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주민들의 눈길이 꽂히는 게 느껴질 정도다. 아이들은 짧은 영어로 ‘헬로’를 외쳐댔고, 나귀와 노새를 끌고 나와 자랑하기도 했다. 마을은 야트막한 계곡에 숨어 있다. 드넓은 구릉들이 산아래에서 살짝 겹치는 부분에 마을이 들어앉았다.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없다면 산마루에서는 도저히 마을이 있는지조차 짐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이런 곳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토굴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은 800년 전이다.
“몽골군들이 침입을 해오자 마을 사람들은 몸을 피할 곳을 찾다가 바위 벽을 뚫고 몸을 숨겼어요. 다행히 그 때문인지 인명 피해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이 그들을 물리쳤을지도 모르죠.”
주민 마지드 자바니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라며 마을 역사를 얘기했다. 동네사람들도 하나 둘 끼더니 이야기를 거들었다. 처음엔 ‘자랑스러운’ 페르시아 역사로 시작된 이야기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의 투쟁사로 이어지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 시대건 국가는 전쟁과 승리로만 유지된다. 페르시아인, 아르메니아인 등 서로 다른 민족들이 치열한 다툼을 벌인 곳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역이다. 주민들은 전쟁통에 몸을 숨기기 위해 이런 집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터키의 카파토키아도 소아시아를 제패하려는 세력들이 자주 충돌하고 전쟁을 많이 겪었던 지역이다. 암굴집은 생존을 위해 만든 집인 것이다.
실제로 이 일대에는 아르메니아계 등 중앙아시아 민족들이 제법 많이 몰려 산다. 인근 조르파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다니는 성당도 있다. 굳게 잠긴 성당문을 두드렸더니 종지기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며 문을 열었다. 이들은 캔도번의 이란인들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이슬람에 당했다’고 했다.
페르시아, 로마, 아르메니아는 2000여년 전부터 세력을 다퉜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진 뒤 아르메니아인들은 나라를 잃었고 AD 3~4세기께에 기독교도로 동화됐다. 십자군 전쟁 때 아르메니아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유럽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캔도번 사람들은 터키계나 아르메니아인들이 턱없이 이란 땅을 넘본다고 하고, 아르메니아인은 원래부터 우리땅인데 뺏겼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40대 교사는 암굴집이 꼭 전쟁 때문에 건설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전쟁 때문이 아니라 지진 때문이란 학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대지진으로 주택이 파괴되자 사람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석굴을 파고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이든 지진이든 생존을 위해서 굴까지 파야 했으니 삶은 고단했을 게 분명하다.
골목길은 복잡했다. 마을 골목길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지만 주민들은 이 좁은길을 노새를 몰고 다녔다. 한 주민에게 집구경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자들의 방을 빼놓고는 촬영도 할 수 있다’며 흔쾌히 집으로 초청했다. 집은 가지런했다. 대여섯평쯤 돼보이는 방 한쪽엔 구멍을 더 파내어 선반을 설치하고 벽장으로 꾸몄다.
“굴 속이라 한겨울에도 춥지 않고, 한 여름에도 시원하죠. 관광객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지만 이란 경제가 어렵잖아요. 주민들은 대개 양을 기르거나 카펫을 짜서 팔거든요.”
그는 벽면 한쪽에 세워진 베틀에서 카펫 짜는 시범을 보였다. 카펫 하나 만드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데 막상 받는 돈은 많지 않다고 했다. ‘페르시아 카펫’은 공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마구간도 토굴 안에 있었다. 동물농장처럼 양과 노새, 닭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
토굴집도 독특하지만 제법 유명한 샘도 있다. 오색약수에서 물을 담아오듯이 인근 마을에서 샘물을 받아가기 위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처럼 톡 쏘는 광천수는 아니다. 물은 차갑고 맛은 담백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재래시장도 구경거리다. 재래시장에선 다양한 향신료와 곡물을 판다. 노랑과 빨강 등 원색을 띠는 향신료가 특이하다.
요즘 마을은 변화를 겪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토굴집이 불편하다며 현대식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전봇대도 세우고, 전기도 끌어들였다. 반면 정부는 문화재로 지정, 이 일대를 관광지로 만들려 하고 있다. 정부 몰래 슬그머니 집을 개조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토굴집의 3분의 1은 개축을 통해 원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국경지대의 작은 마을 캔도번. 불과 네댓 평되는 작은 집에도 슬픈 전쟁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여행길잡이
이란에서는 외국인 여자도 차도르를 써야 한다. 머플러를 준비,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머리에 두르는 것이 좋다.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이슬람권에서 노출은 금기다. 매주 월요일 이란 항공이 테헤란으로 떠나는 직항편을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9시간35분이다. 비자도 필요하다. 이란으로 여행을 가려면 이란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사진 3장이 필요한데, 여성은 반드시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찍은 사진이어야 한다. 교통편은 기차보다 버스가 잘 발달되어 있고, 야간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도시 간 이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하다.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 한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5시간30분이 늦다. 3월부터 9월은 4시간30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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