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하늘·푸른바다… 실제보다 더 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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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23 09:05:58
  • 조회: 323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곧 떠날 여행에 대해 생각할 때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의 창업자 토니 휠러는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로 ‘공항 라운지’를 꼽았다. 알랭 드 보통 역시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집에 눌러 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면서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여행의 상상은 실제 여행보다 강렬하다. 여행지에서 맞닥뜨릴 끈적끈적한 더위, 교통 체증,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사라지고 푸른 바다와 흰 백사장만 떠오르게 한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 상상하는 그 순간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 준비 과정에 불과하던 여행 계획 짜기가 여행의 일부, 나아가 그 자체로 여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지도 않을 나라의 항공권을 검색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먼저 다녀온 이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며 상상하는 ‘클릭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 여행사 투어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1~7월 동안 항공권을 예약만 하고 실제로 구입하지 않은 허수 예약이 전체 예약의 71.8%를 차지했다. 2003년 같은 기간의 63.7%보다 8.1%p 늘어난 것이다.
‘클릭 여행자’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 하나로 세계를 여행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과거 여행사의 전유물이던 항공권 검색과 호텔 예약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자신이 탈 항공편의 기내식, 기내 멀미 봉지 디자인까지 알 수 있다. 박물관 홈페이지의 사이버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여행블로그를 통해 길거리 간식 동영상까지 볼 수 있게 됐다. ‘여행기술’의 저자 노구치 유키오는 “지도나 사진을 실마리 삼아 해외에 있는 미지의 거리를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버추얼 투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여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라며 “버추얼 투어는 현실의 대용물이 아니라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떠나는 ‘가짜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차피 상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방콕이건 남극이건 가상의 나라이건 상관없다는 것이다. 호주의 문화창작집단 ‘워킹독’ 그룹이 2003년 펴낸 가짜 여행 가이드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원제:몰바니아-근대 치의학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나라 Molvania-A Land Untouched by Modern Dentistry)는 50만부가 팔렸고, 한국어를 비롯한 전세계 11개 언어로 번역됐다. 몰바니아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사이에 존재한다고 설정된 가상의 동유럽 국가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30분짜리 비디오를 제작, 국제선 비행 도중 상영하기도 했다.
2004년엔 동남아시아 가상국가 ‘파익탄(파익탄-배낭 메고 걸리는 일사병)’, 지난해엔 라틴아메리카편 ‘산 솜브레로(산 솜브레로-카니발, 칵테일, 그리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나라)’가 출판됐다. 2005년 번역 출간된 한국어판은 3000여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가짜 우주여행 가이드 ‘우주 여행의 위험’이 출판됐다. 상상 속의 우주선을 타고 돌아본 화성·목성 여행기와 ‘우주에서는 치아가 빨리 썩으니 충치를 치료하고 오라’는 등의 우주 서바이벌 가이드가 실려 있다.
기존의 평범한 여행지와 여행방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여행자들이 늘면서 전혀 색다른 여행법 제안도 나온다. 프랑스 작가 조엘 헨리가 운영하는 ‘라투렉스(Latourex)’는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실험여행’을 실험하는 단체다. 해 질 무렵 도착해 이튿날 해 뜰 무렵 떠나기, 비행기 타지 않고 24시간 공항에서 놀기, 관광명소 반대편에서 사진 찍기 등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다. 라투렉스의 실험결과는 2005년 론리플래닛사의 ‘실험여행(Experimental Travel)’이란 책으로 출판돼 나왔다.
클릭여행, 가짜여행, 실험여행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한다’는 기존 여행 개념을 뒤집는다. 어디든 상관없고, 굳이 떠날 필요도 없으며, 무엇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가짜 여행 가이드북을 쓴 ‘워킹 독’의 산토 실로로는 “기존 가이드북이 제시하는 ‘여행 엘리트주의’를 비웃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그것 자체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짜 여행 시리즈와 실험여행에 대해 “여행에 대한 황당한 바람을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상상여행은 기존의 어떤 여행보다도 여행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 여행이 갖게 마련인 물리적 한계를 넘어,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바로 상상여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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