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위대한 여행, 온몸으로 울었다[세계를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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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22 09:51:58
  • 조회: 287
여행가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임스 홀먼(James Holman·1786~1857). 영국 출생. 32번째 생일인 1819년 10월15일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칼레로 가는 정기선에 오른 이래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시베리아, 아라비아 사막,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적도기니의 섬, 브라질의 열대림…. 사람이 사는 모든 대륙을 답사했고 직접 접한 문화권은 200곳이 넘는다. ○○○쯤 되는 실제 여행기간에 그가 여행한 거리는 40만㎞. 지구를 10바퀴 돈 거리다.
그런데 홀먼은 발을 절었다. 더욱이 맹인이었다. 맹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것밖에 없던 시대였다. 그는 거의 혼자서 여행했고, 그 지역 언어를 한 마디도 모르는 나라로 들어가곤 했다. 빠듯한 여비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타는 마차나 농부의 수레, 화물선, 말을 타거나 걸어서 여행했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전문적 여행가들 중에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어느 여행가보다 더 완벽하게 지구 곳곳을 누볐고, 그 이전의 시력이 온전했던 어느 여행가 못지않게 다양한 지역을 섭렵했다. 그러나 ‘위대한 탐험의 시대’가 저물면서 그의 이름은 금세 잊혀졌고 그의 저작들도 자취를 감췄다.
‘세계를 더듬다’는 이 경이로움에 가득찬 맹인 여행가를 망각의 역사에서 불러낸 책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홀먼에 대해 알게 된 저자는 영국·오스트레일리아·홍콩 등 홀먼의 발자취를 ○○○고 자료를 수집해 그의 생애와 당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책에 나오는 모든 사실, 묘사, 심지어 대화까지도 모두 역사적 기록에서 끌어냈다”는 저자는 역사상 가장 활동적이었던 맹인 여행가의 특이하면서도 생생한, 그리고 감각적인 여행으로 안내한다.
책은 삶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었던 한 인물의 전기라고 할 만하다. 12살때 입대해 해군장교의 꿈을 키우던 홀먼은 혹독한 근무조건으로 관절염을 얻고, 치료차 휴양하던 중 시력까지 잃었다. 25살때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지팡이로 길을 더듬어 나가는 법을 익혔고, ‘녹토그라프’라는 기계를 이용해 글을 썼다. 현역근무가 불가능한 해군장교들로 이뤄지는 ‘윈저의 해군 기사’가 됨으로써 구걸하는 신세도 면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여행에 나선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여행은 “삶을 살아가는 수단… 세상과 세상의 다양한 기쁨과 교감하는 행위”였다. 그의 모험은 일반인도 쉽게 해내기 힘든 것이었다. 늪지와 독충이 우글거리는 시베리아의 바라바 스텝을 헤쳐나갔고 불과 연기, 용암이 솟구쳐 나오는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올랐다. 아프리카에선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오갔고, 브라질에선 열병에 걸린 상태에서 밀림 속을 헤맸다.
사실 이 책을 접한 많은 이들은 “맹인이 어떻게 여행을 하냐”라는 의문이 들지 모른다. 당대의 비판자들도 그랬다. 홀먼의 여행기가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라는 식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행가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볼 것들도 더 세세하게 만져보고 조사해보게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만의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로마의 유적지는 손가락 끝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캐비어 등 요리의 맛으로 이해했다. 베수비오 화산은 “유황 냄새, 마구 요동치는 지구의 소리, 사방을 뒤덮은 열기”로, 적도기니의 섬 ‘페르난도 포’는 진정한 원시림의 독특한 냄새와 새들의 지저귐으로 느꼈다.
책은 단순한 인물 전기나 여행기를 넘어 우리 삶에 대한 다양한 영감들을 제공한다. 특히 시각 중심의 삶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일면적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시각 중심의 인식은 밝고 생생한 면을 쫓아다니는 경향이 있다. 어떤 물체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우리가 그 물체의 어떤 면을 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반면 촉각으로 감지되는 세계는 훨씬 더 다양하고 더 감동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각은 한꺼번에 꿀떡 삼키지만, 촉각은 홀짝홀짝 마신다. 촉각의 세계에서 물체는 빛의 속도로 갑자기 그 성질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필요에 따라 조금씩 그 성질을 드러낸다.”
오늘날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되묻는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편안한 여행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여행을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의 ‘공란’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저자는 거리를 정복하는 수단이 아닌 인식의 과정으로서의 여행, “감각으로 넘치는 의식적인 여행”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전한다. 홀먼처럼 여행지를 여유롭게 걸으며 탐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홀먼의 지칠 줄 모르는 삶을 통해 세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홀먼은 세계일주 여행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절벽 꼭대기에서, 또는 푸른 숲의 한복판에서… 나는 언덕에 부는 바람, 묻힌 나뭇잎들의 엄숙한 정적에 지능이 깃들어 있음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인식은 나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러면 울 수밖에 없었다.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없어서였다.” 이 책의 원제가 ‘A Sense of World’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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