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가 봤나요, 몰바니아[‘상상의 나라’로 떠나는 컬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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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21 08:55:43
  • 조회: 321
깨나 했다는 당신도 아직까지 이 나라는 못 가봤을 것이다. 들어본 적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몰바니아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동유럽의 끄트머리,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사이,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먼지가 남풍을 타고 사뿐히 내려앉는 거기에 몰바니아가 있다.
몰바니아는 유럽 국가로는 이례적으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상실한 나라다. 남부 대평원은 ‘세계의 단조로운 지구’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다. 중세 고도 루블로바는 가까스로 2차 대전의 폭격을 피했으나, 종전 기념 횃불잔치가 대형 화재로 번져 아쉽게도 도시 대부분이 불탔다. 아무것도 없는 그 황량함이 전세계 ‘컬트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관광객들은 수도 루텐블라흐를 들른 뒤 휴양도시 스베트랑지나 루블로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루텐블라흐는 동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다. 칙칙한 잿빛 건물만 즐비하던 구 소련 변방도시의 이미지는 벗어버린 지 오래다. 시내 중심의 ‘부시부시’ 광장은 몰바니아 근대화의 아버지 ‘스틀론코 부시부시’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1930년대 총리를 지낸 부시부시는 1503년 11월 3주간의 르네상스를 거친 뒤 침체에 빠져 있던 몰바니아를 일약 근대 국가로 끌어올렸다. 몰바니아 알파벳을 33자로 간소화하고 트랙터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입했다. 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지폐를 손수레에 싣고 다닐 지경이 되자, 손수레 자체를 통화로 선포하는 과감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몰바니아엔 그의 이름을 딴 도로, 강, 산맥, 심지어 전염병까지 있다. 몰바니아는 2차대전 종전 후 소련 연방에 편입됐으나 82년 루텐블라흐 장벽이 붕괴되면서 역사의 전환점을 맞았다. 조사 결과 루텐블라흐 장벽은 부실공사로 무너졌음이 밝혀졌으나 이 사건은 몰바니아의 개혁·개방을 10년 이상 앞당겼다.
루텐블라흐 최고의 관광명소는 망명 중인 왕족들이 살던 궁전, ‘팔라츠 로열’이다. 깃털 달린 철모를 쓴 근위병 ‘바주르카스’들이 매일 아침 궁전 앞을 행진한다. 사진기를 들이대는 관광객을 정면으로 조준하는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한다. ‘갤러리 나죠날(국립 미술관)’도 둘러볼 만하다. 2차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도난 당한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 등의 명화가 전시돼 있다. 구시가지 근처 자모크자의 붉은 벽돌집은 몰바니아판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 조르주 그렉제르라는 지방 상인이 45명의 루텐블라흐 유대인을 이곳 지하 창고에 숨겨줬다. 지금은 학생 기숙사로 쓰인다.
유럽 스키어 중에서도 진짜 마니아들은 남부 ‘몰바니아 알프스’ 지역을 찾는다. 최근 지뢰가 완전히 제거돼 2000㎞의 광활한 스키 코스가 만들어졌다. 몰바니아 알프스의 중심지 스베트랑지는 온천 휴양 도시다. 스베트랑지의 제르코 강변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할츠! 조르반!(도둑이야!)”이라고 외치는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근교 포스텐왈지 산맥은 6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소. 에탄올과 기침약을 섞어 만든 달콤한 알코올 음료 ‘카롤시’가 명물이다. 동부 대초원 지대의 루블로바도 놓치기 아깝다.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와 공장 굴뚝 사이로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교회와 광장이 숨어있다. 곳곳에 개똥이 널려 있어 ‘몰바니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사사바 마을도 가볼 만하다.
무엇보다도 여행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몰바니아 사람들의 타협 없는 고집, 무뚝뚝한 다정함이다. 그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희귀한 3중 부정 언어체계를 지켜오고 있다. “당신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를 “당신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지요?”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행운을 빈다’는 뜻의 “댁의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뚱뚱하기를!”에는 몰바니아 특유의 위트와 애정이 담겨 있다.
개혁·개방 25년째. 몰바니아라고 세계화의 ‘해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전국 어디서나 TV만 켜면 세 남자 세 여자의 사이코 심령 미스터리 스릴러 ‘프리엔드즈’나 ‘푸드 앤 더 시티’를 볼 수 있다. 미국 드라마의 광풍을 몰바니아라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루텐블라흐엔 최근 버거킹과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다. 고유의 식습관을 반영해 모든 메뉴에 몰바니아산 양배추가 12%씩 들어가도록 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편지보다 느리긴 하지만 e메일도 보낼 수 있게 됐다. 몰바니아의 변화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더 나빠지기 전에 서둘러 다녀오라”고 말한다.
몰바니아 국영 항공사 에어로몰브가 유럽 주요 도시와 루텐블라흐를 잇는 정규 노선을 운행한다. 2000년 비행 2시간 전 음주를 금하는 새 법안에 반대해 조종사 파업을 벌여 전 유럽의 이목을 모은 항공사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비행기 대신 ‘실수’로 몰바니아에 도착한다. 몰바니아로 가려면 시내 대형 서점의 여행서적란에서 몰바니아 여행 가이드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오래된 미래)를 펴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또 유일한 방법이다. 몰바니아는 호주 문화창작집단 ‘워킹 독’이 2003년 창조해 낸 가상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첫머리에 이미 썼지 않았나. 몰바니아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나라’라고. 그럼 사진은? 체코 프라하의 뒷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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