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닮은, 복제된 상처… 신음하는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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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09 09:01:38
  • 조회: 420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유재현|그린비
아르앤아르(R&R, Rest and Relaxation/Recuperation;휴식-오락-회복)라는 게 있다. 참전 미군에게 연차로 주어지는 1주일간의 휴가. 특히 섹스는 가장 효과적인 아르앤아르였다. 2차 대전 당시 첫 선을 보였는데 한국전쟁에서 본격화됐다. 당시 미군의 아르앤아르 기지는 미군 점령하의 도쿄였다. 전쟁터인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군의 아르앤아르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도쿄와 서울에 이르는 거대한 군사적 매춘벨트를 만들었다.
10여년 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후방기지였던 태국 방콕이 아르앤아르 도시로 떠올랐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하자 유럽인들과 뒤이어 고도경제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인들이 ‘섹스 애니멀’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도 이때다. 그리고 지금, 방콕의 새로운 고객은 한국인들이다. 전쟁과 기지촌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그리고 그들의 수도가 방콕, 마닐라와 함께 일본인들의 3대 섹스관광지 중 하나였던, 바로 그 한국인들이 ‘태극기 휘날리며’ 매춘관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한국인들이 만나는 수많은 매춘 여성들은 누구인가. 전쟁과 식민지의 고통에 신음했던 아시아의 딸, 우리의 딸들은 아닌가. 우리가 외면했던 아시아의 슬픔과 상처는 바로 우리의 슬픔과 상처 아닌가.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근저에 두고 2차 대전 종전 후 동아시아의 지형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전작들에서 인도차이나와 쿠바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줬던 저자는 이번엔 아시아 역사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책이 들춰내는 아시아의 기억들은 우리에겐 희미하게만 알려졌던 것들이다. 태국의 반복되는 쿠데타와 이에 얽혀있는 왕권의 강화 과정에서부터 공산주의의 비인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킬링필드’의 또다른 이면, ‘현실사회주의’의 희생양인 중국의 베트남 난민 등 다양한 주제들이 거론된다.
특히 저자는 이 같은 기억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태국의 섹스 산업에선 한국의 기지촌을, 대만의 2·28 학살에서 6·25 양민학살과 광주항쟁을, 베트남의 전쟁과 분단에선 한국 전쟁과 분단을 겹쳐 읽는 식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아시아는 지리가 아니며 역사이고 이념”이라고 했다. 아시아는 일본과 유럽, 미국의 패권 아래 수탈과 쿠데타와 독재와 민족해방투쟁 등을 공통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모두 한 애비와 에미의 자식들”이다. 이 때문에 전 아시아인을 하위에 두고, ‘하위 제국주의 국가’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것은 한국의 미래가 아니라고 본다. “남한의 미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주도하는 자본과 시장의 아시아가 아니라, 핍박 받는 아시아 민중의 신음소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시아에, 아시아를 통해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문화 리포트’라는 익숙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대상이 일찍이 제대로 알려지고 이해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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