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눈뜨면 낯선 섬이 ‘알로~~~~하!’ Hawaii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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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09 08:59:23
  • 조회: 237
'물위의 판타지' 하와이 크루즈

“하와이 현지 주소 여기 쓰시고요.” “…저기 그런데 그게 움직이는 건데요, 밤엔 바다에 있고요, 매일 바뀌거든요. 그러니까, 배인데요….”
대한항공 호놀룰루행 체크인 카운터. 직원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우리는 주소란에 배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 이런 ‘애국적’인 이름이라니. 같은 회사에 ‘프라이드 오브 알로하’란 배가 없었다면 1주일 내내 ‘이름이 이게 뭐냐’며 투덜거렸을 것이다. 움직이고, 밤엔 바다에 있고, 매일 바뀌는 것. 스핑크스가 던진 수수께끼 같지만 이것이 바로 ‘크루즈’다. 배는 1주일 동안 나와 짐을 싣고 하와이 4개 섬을 종횡으로 항해할 예정이었다. 오아후 섬 제2부두에서 긴 뱃고동을 울리며 배가 출발한 것은 토요일 오후 8시였다.
승객 모두가 갑판으로 뛰쳐나왔음에 틀림없다. 수영장이 있는 11층 갑판은 ‘명동’이었다.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승객은 2138명, 오늘 탄 승객도 2138명. 여기에 승무원 921명. 승객 2.3명당 승무원 1명꼴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타는 초호화 크루즈선의 1.5명당 1명까지는 못되어도 이 정도면 휼륭하다. 배 길이는 내가 전력질주해도 1분이 넘게 걸리는 280.59m, 폭 32m, 8만1000t. 15층에 11개의 식당과 9개의 바가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인 1주일간 이 배에서 소모되는 계란의 수였다. 6만개. 그 많은 계란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일찌감치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자쿠지에 들어간 남미 관광객들은 한 손엔 칵테일을,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좋아 보였다. 꼭 저 자쿠지에서 칵테일 마시며 노닐어 보리라.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망망대해였다. 배는 천천히 ‘빅 아일랜드(하와이섬)’의 힐로 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다’는 ‘짐을 쌀 필요가 없어요’와 함께 크루즈 여행 브로셔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선장의 안내 방송이 들렸다. “화산도 보시고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오후 5시까지 돌아오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오늘 밤 선내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도 놓치지 마세요. 알로----하!” 알로하는 ‘안녕’+‘모든 게 괜찮아’+‘사랑해’가 결합된 하와이 인사말. ‘로’자가 길수록 제대로다. 객실 우편함에 꽂힌 선내 일간지 ‘프리스타일 데일리’에는 빅 아일랜드 소개와 함께 ‘와인 2병 사면 3병째는 무료’라는 이벤트 공고가 적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와이가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와이는 137개의 섬으로 이뤄진 제도다. 사람이 사는 섬은 8개. 그중 6곳만 관광이 가능하다. 1주일간 메이저 4개 섬을 모두 돌아보는 일정은 크루즈가 아니면 짤 수 없다. 대부분은 와이키키 비치와 호놀룰루 공항이 있는 오아후 섬에 머물면서 마우이나 빅 아일랜드를 당일 또는 1박2일로 다녀온다. 하와이의 진수는? 짐작하듯 빅 아일랜드나 마우이 같은 ‘덜 관광지화 된’ 섬에 있다. 우리의 배는 오아후를 출발해 빅 아일랜드-마우이-또 빅 아일랜드-카우아이-오아후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당신이 잠든 동안 배는 시속 22노트(약 40㎞)로 부지런히 달려 매일 아침 새로운 항구에 데려다준다. 기특하기도 하다.
나가 놀던 사람들도 해가 지면 돌아온다. 차려 입고 식사하고, 훌라 댄스 강연을 듣고, 수영장에서 빙고 게임하고, 선내 극장에서 공연도 본다. 시가 바도 있고, 인터넷 카페도 있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놀이방과 오락실, 나이트클럽도 있다. 사흘이 지나도 계속 길을 잃었다. 손목에 흰 수건까지 두른 승무원이 “따라오라”고 앞장섰지만, 그마저도 “이 길이 아닌가벼”하며 몇 번이나 머리를 긁었다. 그만큼 배가 컸다. 저녁마다 다른 식당을 골라 먹었지만 내릴 때까지 가보지 못한 바와 식당이 남아있었다. 술과 음료만 빼고 식사값은 배값에 포함돼 있다. 승무원들도 인심이 좋다. “아무리 배불러도 디저트는 반드시 먹고 가야 한다”며 슬며시 초콜릿 케이크 접시를 들이밀곤 했다. 2㎏, 어쩌면 3㎏가 쪘을지도 모른다. 객실엔 체중계가 없었으니까.
배가 사랑스럽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차가운 전채와 뜨거운 전채, 디저트에 에스프레소 커피까지 빠뜨리지 않는 프랑스식 정찬을 먹을 때, 등이 깊숙이 파인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고 ‘타이타닉’에나 나올 법한 계단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때, 폴짝폴짝 뛰며 스윙댄스를 배울 때, 가 아니었다.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수영장 선베드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 기둥마다 촛대 모양의 전등이 걸린 커피 바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실 때, 텅 빈 6층 도서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달이 지는 것을 지켜볼 때. 그 순간엔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명령하고 싶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되지 않는 막막함 속으로 사라지는 달은 아름다웠다. 배만큼이나 그 시간들도 사랑스러웠다. 매일 아침 다이어리 첫머리에 써 넣은 ‘오늘의 계획 1호’는 ‘수영장 앞에서 빈둥대기’였다. 그러나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웠다. 왜? 한국인은 너무나 부지런하니까.
배로 돌아올 때마다 승무원 한 명이 손바닥에 뭔가를 뿌려줬다. 향수인가 싶어 코에 갖다댔다가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소독약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독약 분무기가 식당 입구마다 설치돼 있었다. 배는 일종의 밀실. 전염병이라도 퍼지면 걷잡을 수가 없다. “크루즈 선사 가운데 유일하게 실시하는 서비스”라고 승무원들은 자랑했다. 1778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이 서구인 최초로 하와이에 발을 디딘 뒤 5년 만에 원주민의 50%가 사망했다. 60년 뒤엔 98%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서구인들이 옮아온 질병 때문이었다. 현재 하와이의 꽃과 나무 가운데 자생종은 10%가 채 되지 못한다. 순수 하와이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원주민은 겨우 2000여명. 250년 전만 해도 80만명이었다. ‘낙원’은 사라진 것이다.
훌라 댄스와 서핑, 꽃목걸이 같은 하와이 풍습은 관광상품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외지인을 마음을 다해 섬긴다’는 알로하의 정신은 관광정책으로 변신한 것이 아닐까. 배에선 끊임없이 하와이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나른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번다한 잡사가 모두 부질없어 보였다. 음악에 수면제라도 탔는지, 그저 눕고만 싶어졌다. 원주민들이 살이 축축 접힐 만큼 뚱뚱한 사람을 미남미녀로 여겼다는 것도 이해가 됐다. 배 안이야말로 ‘낙원’이었다. 하와이에서 수입한 ‘알로하’의 정신과, 음악과, 훌라 댄스와, 꽃 향기로 무장한. 이 낙원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의심스러울 때쯤, 항해를 마친 배는 오아후 호놀룰루 부두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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