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서양철학 원류, 길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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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08 08: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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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철학기행
클라우스 헬트|효형출판

유럽의 고대는 철학과 학문이 별개가 아니었다.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물음인 ‘그것은 무엇인가’에 철학적인 인식을 펼쳤던 첫 인물은 다름 아닌 플라톤이다. 따라서 유럽의 철학, 문화, 학문은 플라톤을 밑거름으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 부퍼탈 대학교 철학 교수를 지낸 저자는 지중해 연안의 국가를 누비며 사상을 답사했다. 그 여행은 현재가 아닌 서양철학 근원의 강을 거슬러 가는, 과거로 향한 여행이다. 기원전 수세기 이전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의 여정은 한 철학자, 플라톤으로 향해 있다.
올림피아의 박물관에는 아폴론 동상을 비롯한 그리스시대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저자는 박물관에 서서 아름다움, 즉 미(美)에 대한 고대인들의 사유에 경탄한다. 피타고라스는 수적 비례를 통한 조화에서 미를 찾았다면 플라톤은 미와 선(善)의 관련성을 탐색했다. 플라톤으로 향하는 여행은 그리하여 올림피아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이는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을 군주의 자문관으로 초청했다. 플라톤에게서 정치와 학문을 한 수 배우기 위해서였다.
로마는 키케로를 빼놓을 수 없다. 키케로는 그리스 철학을 로마에 수입한 주인공이다. 중세 대다수 철학자들은 플라톤을 접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 지식에 대한 열망은 단지 희망에 머물렀다. 하지만 키케로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 로마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키케로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 ‘후마니타스(인간성, 인문주의)’는 지중해 연안에 퍼졌고 이후 그 단어는 ‘그리스 교양’을 지칭하게 됐다.
피렌체를 찾은 저자의 발길은 당연하게도 르네상스로 향한다. 르네상스로 가는 길에도 플라톤이 우뚝 서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 세워진 ‘플라톤 아카데미’가 사상적 지주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의 후견인 로렌조 데 메디치는 플라톤의 신봉자였다. 그는 플라톤을 철학과 예술 발전을 위한 지침으로 삼았다. 르네상스가 플라톤의 재탄생으로 해석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한다. 플라톤이 확립한 고전철학의 전통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지식인들의 판단기준을 제공했다.
책에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의 부침을 비롯한 고대사가 흥미롭게 녹아있다. 또 쇠락한 고대 도시 앞에 설 때마다 저자는 회한에 젖는다. 지금의 터키에 있는 도시 페르가몬은 과거 헬레니즘의 중심지이자 예술의 보물창고로 기원전 3세기에 20만권 규모의 도서관을 보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규모만 짐작할 정도의 돌기둥 몇 개만 남았다. ‘저주받은 도시’ 폼페이에는 흔히 쾌락주의로 불리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유행했다. 저자는 거기서 유럽 근대 개인주의의 원형을 발견하며 씁쓸해 한다. 발길은 이어져 스페인 세비야에 다다른다. 세비야는 콜럼버스가 역사를 뒤흔든 항해를 시작한 곳이다. 신세계의 개척과 정복 이후 세계는 경제와 정치 등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세비야에서 저자는 콜럼버스 정복의 해악을 되짚으며 문화의 다양성을 역설한다. 서양철학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문화 다양성을 외치는 장면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객수 같다. 이강서 옮김.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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