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천년 신라의 혼 ‘노천 박물관’[한국의 숲, 한국의 명산 경주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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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07 08: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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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은 옛 신라의 숨결을 머금은 거대한 문화재다. 남산만큼 자연과 문화유산이 조화를 잘 이룬 곳도 드물다. 신라인들은 천년을 두고 남산을 보듬고 아꼈다. 왕과 귀족이 불국사로 발걸음을 옮길 때 백성들은 남산을 올랐다.
그런 만큼 남산은 우리 조상들에겐 마음의 휴식처이자 성지였다. 겨레의 꿈이 어린 신화가 담겨 있고, 종교가 숨쉬고, 선조들의 문화예술이 깃들어 있다. 삼국유사는 경주를 가리켜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는 듯하다)’이라고 묘사했다. 그 중심에 남산이 있다.
신라인들은 남산을 불국토 수미산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는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도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남산은 경주의 남쪽에 있다. 정확한 시대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땅이 서라벌로 불리던 그 이전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남산은 돌산이다. 동서로 4㎞, 남북으로 8㎞로 뻗은 이 산에는 2개의 봉우리가 오롯이 마주보고 서 있다. 금오봉(해발 468m)과 고위봉(494m)이다. ‘고위’는 주변 봉우리보다 높다고 해서, ‘금오’는 황금빛 거북 모양의 봉우리라 해서 붙여졌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역시 금오봉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다. 금오봉 남쪽 중턱에 있던 용장사에서 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역작을 남겼다. 남산은 용장·천룡·백운·부처·탑골 등 골짜기는 무려 40여곳이나 된다. 각 골짜기는 변화무쌍해 늘 새로운 느낌을 전한다.
기에다 명주실처럼 길게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펼쳐지는 끝없는 유적과 유물 등 천년 신라의 신비에 사람들은 남산을 예찬한다. 남산은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400여년에 걸쳐 신라의 백성들이 정성을 드린 곳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 부처를 새겼고, 평평한 둔덕마다 불탑을 세웠다.
용장사곡 삼층석탑과 석불좌상,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마애석불을 비롯해 절터와 불상·석등·왕릉 등 문화재가 686점이나 된다. 보물과 사적으로 지정된 것만 26점이다. 신라 전성기에는 사찰이 800개가 넘었다고 전해온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 이름없는 석공들이 무딘 정을 들고 마음을 새겼다. 이 때문에 남산에는 석굴암처럼 완벽하고 잘 생긴 석불은 그리 많지 않다. 만들다만듯한 미완의 작품들이 많다. 불상의 뒷모습 처리도 깔끔하지 않다.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부처상이나 옆집 아줌마 같은 넉넉한 보살상, 깊이 새기지 못하고 절벽에 윤곽만 새겨놓은 선각불 등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는 게 남산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신라인들은 남산 그 자체를 신성시했고, 어느 곳에서든 부처가 바위에서 튀어나와 자신 앞에 있음을 느끼면서 이곳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유네스코가 2000년 남산지구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를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다. ‘노천 박물관’이라는 명성이 경주 남산의 역사성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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