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서사 담긴 SF웹툰 “즐기시면, 뿌듯해요”[만화창작팀 ‘풍경’ 박승재·박기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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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8.06 09: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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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그리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2000컷이 들어간 ‘에스탄시아’는 2000시간이 걸렸고, 3000컷까지 그린 ‘블러드 오션’은 3000시간이 걸렸다. 맞는 계산이지만 본인들도 “그렇게 되나?”하고 놀란다. 좀 줄여볼까 해도 둘이서 한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왔다갔다 하는 과정을 추려보면 결국 결론은 ‘한 컷에 한 시간’이다. 1회분 그리는 데 드는 시간은 36시간. 이렇게 느릿느릿 공을 들이니 3일 밤 새우면 하루 자는 식이다. SF만화 ‘블러드 오션’ 1, 2부가 단행본으로 나온 7월27일, 눈가에 ‘다크 서클’을 짙게 드리운 만화팀 ‘풍경’을 만났다.
‘풍경’은 박승재씨(33)와 박기봉씨(27)로 이뤄진 만화창작팀이다. 두 사람은 2001년 ‘펜촉’이라는 아마추어 만화가 공동화실에서 처음 만났다. “옆자리였지만 말은 거의 안 했다(박기봉)” “난 얘한테 관심도 없었다(박승재)”고 할 정도로 안 친했다. 그러다 기봉씨가 군대에서 제대한 2003년 다시 만나 ‘풍경’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서로 뭔가가 마음에 들었으니 팀을 꾸렸을 텐데 두 사람 다 끝까지 “어쩌다” 만나서 “내가 너랑(형이랑) 팀 해준다”는 말투다. 말은 그렇게 해도 누구보다 잘 맞는 두 사람이 지난 4년간 이룬 성과는 크다.
미디어 다음에 연재한 SF만화 ‘에스탄시아’는 2006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반응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좋았다. 미국 온라인 만화포털사이트 웹코믹스네이션(webcomicsnation)에 주간 인기순위 2위까지 올랐고, 현재까지 10위권에 머물러 있다. 그해 미국 온라인 만화축제 무한캔버스부문 우수작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에스탄시아’를 끝내고 작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연재 중인 ‘블러드 오션’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팬카페에는 2000여명의 회원이 모였고, 문학세계사에서 27일 단행본으로 출간한 데 이어 프랑스 출판사 카스터만에서도 출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웹에서 만화를 보고 계약을 서둘렀다는 문학세계사 김요안 실장은 “국내에는 SF만화가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연재되고 인기를 끄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승재씨는 “지금 한국에서 웹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서사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웹툰이 서사를 담지 못하고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금방 거품이 꺼질 것”이라며 “다른 작가들도 많이 동참해서 웹툰이 더 발전적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승재씨는 고교 졸업 후 만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원래는 역사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만화가 오세영씨가 “역사만화를 그리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자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승재씨는 “배우고 나니까 못 그리겠더라”고 했다. “역사에 재밌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식으로 배우고 나니까 함부로 못 건드리겠더라고요.”
박기봉씨는 “나는 그냥 재밌는 만화나 그리자는 식”이라며 웃었다. 만화입문기도 독특하다. “처음 본 만화가 중3 때 본 ‘드래곤볼’이었어요. 근데 일본만화책은 뒤에서부터 넘기잖아요. 저는 그걸 모르고 앞에서부터 봤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미궁으로 빠져드는 거예요. 빌려준 형한테 도저히 못보겠다고 했더니 뒤집어 주더라고요. 하하하….” 고등학교 때부터 선배 만화가 문하생 생활도 하고 혼자도 작업해보는 등 시행착오를 겪고 ‘풍경’에 안착했다. 기봉씨가 그리고 싶은 만화는 모험이야기다. 홀로 해상어드벤처 만화도 준비하고 있다.
팀을 만든 두 사람은 먼저 ‘크릭크릭’이라는 로봇만화를 6개월 동안 아마추어 만화가 코너에 연재하며 정식 연재에 도전했다. 6개월 후 데뷔기회를 얻었지만 새 시놉시스는 아홉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포털사이트 측에서는 기계가 주인공인 SF만화를 원했지만 ‘풍경’의 생각은 달랐기 때문이다. 기계보다 사람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연재한 ‘에스탄시아’는 복제인간들이 도시를 탈출하는 내용이었다. 신인은 보통 조회 수가 15만 이상이면 성공이라고 하던데 이들은 30만까지 올라갔다. 기봉씨는 “미래이야기지만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SF라고 해서 이상한 소품을 만들어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탄생한 신작 ‘블러드 오션’은 27, 28세기를 배경으로 한 우주개척시대 이야기다. 우리말로 하면 ‘피바다’. 5부에 우주가 피로 물드는 장면도 있고 그외 밝힐 수 없는 함축적 의미도 들어있다. 가벼운 생활코미디에 익숙해진 요즘 독자들에게서 초반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항의도 많이 받았다. 재밌다고 하는 독자들에게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재미없다는 독자들은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재를 주2회에서 3회로 연장했다. 하고 있는 다른 일들도 모두 접었다. 스토리도 빠르게 진행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밌는 에피소드도 넣었다. 이제 팬들은 자기들끼리 연보를 정리하고 표까지 만들어가며 다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전작 ‘에스탄시아’와의 연결고리를 멋지게 찾아내는 팬들도 있다. 컴퓨터 하드가 망가지는 바람에 2회 연속 연재가 펑크나면서 ‘거만해졌다’ ‘약속 안 지킨다’는 욕도 들었다. 기다린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기봉씨는 “주위에선 기왕이면 다른 장르하지 왜 SF냐고 말한다”고 했다. 승재씨는 “국내에 SF 팬들이 없는 게 아니라 독자들의 눈이 높아서 국내 만화에 만족을 못한다”고 말했다. 수준 높은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두 사람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승재씨가 콘티를 짜면 기봉씨가 배경을 그리고 다시 승재씨가 배경에 맞춰 인물을 그리고 나면 기봉씨가 그 위에 채색을 한다. 마지막으로 승재씨가 마무리를 한다. 막 나온 단행본을 받아든 두 사람은 색깔을 꼼꼼히 살피며 손으로 살며시 쓰다듬었다.
연재작품이 계속 인기를 얻으면서 ‘풍경’팀은 여러 가지 솔깃한 제의도 많이 받았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들었고 애니메이션의 천국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시켜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멀리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국내 한 영화사에서는 유명 영화배우의 이름을 대며 ‘영화제작에 참고하고 있으니 미리 고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신인치고 ‘혹’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들이지만 두 사람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웹툰인 만큼 멋있어 보이지만 위험한 손길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실을 탄탄히 다지는 데 몰두하고 있다.
‘풍경’은 최근 남양주에서 금천구 가산 디지털 단지로 사무실을 옮겼다. 새 팀원도 영입했다. 기봉씨는 “형이랑은 너무 잘 알아서 3일 동안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안할 때가 많은데 새 팀원과는 수다가 끊이지 않아서 첫날 턱이 아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블러드 오션’ 다음 작품으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형사의 이야기도 구상 중이다.
“가혹하게 해야 돼요. 요즘 웹툰에 정말 실력있는 분들도 많고 신인들도 얼마든지 자기 그림을 보일 수 있잖아요. 힘들지만 즐겁게 열심히, 저희 만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분들이 있으니까 뿌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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