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태크/금융] “돈의 무서움… 모르면 당한다”[‘쩐의 전쟁’ 원작자 박인권 화백]

    이 게시글을 알리기 tweet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7.20 09:06:32
  • 조회: 335
온 나라가 월드컵에 들떴던 2002년, 박인권 화백(53)은 뒷골목 사채시장을 헤집고 다녔다. 때론 피해자의 모습으로, 때론 만화가의 모습으로 집요하게 악덕 채무관계에 대해 묻고 다녔다. 사채업자들은 그를 ‘미친 놈’ 취급하며 위협했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여를 돌아다니고 2003년, 박화백은 스포츠신문 굿데이에 사채시장의 폐해를 다룬 만화 ‘쩐의 전쟁’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스포츠칸으로 지면을 옮겼다. ‘쩐의 전쟁’은 최근 동명 드라마의 흥행성공과 대부업 광고 논란 등으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성실한 취재와 사실적 내용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왜 하필 돈, 그것도 사채시장을 그렸을까.
“아무도 얘기를 안하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절규가 심했는데….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국가가 사채를 무장해제했죠. 이자철폐를 합법화해서 연 66% 이자가 가능해졌어요. 복리까지 치면 음성적으로는 이자가 400%까지 올랐어요. 외환위기 직격탄에 이어 카드대란이 왔고 그야말로 빚의 광풍이 시작된 거죠.”
작심하고 취재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턱대고 대부업 사무실에 들어가 악덕행위에 대해 물었다. 업자들은 그를 적대시하며 “당신 어디 사냐” “조심하라”며 위협해왔다. 정공법이 통하지 않자 그는 에둘러 가는 법을 택했다. 인터넷에 있는 ‘신용불량자 모임’에 아는 신용불량자의 ID로 가입해 만화가 신분을 숨기고 피해자들을 만났다. 몇달 동안 그들과 친분을 쌓다가 오프라인에서 여성피해자 4명, 남성피해자 3명을 만나 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왜 빚이 생기게 됐는지, 어쩌다 신용불량자까지 됐는지 물어봤죠. 악덕업자들이 어떻게 돈을 갈취하는지 수법도 들었어요.”
마지막에는 업자들을 다시 찾아갔다. 불친절하고 비협조적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는 그들도 박화백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법을 공부하고 갔거든요. 민법, 상법까지. 그 사람들은 말로 협박하는 달인이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게 법이에요. 사례를 확보한 상황에서 법을 근거로 물으니까 당황할 수밖에 없죠.”
박화백은 취재를 위해 실제 대부업을 해본 적도 있다.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당신도 해봐라’예요. 그래서 해봤어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진짜 대부업을 해봤죠. 그렇게 해봐도 저는 악덕업자들 하는 짓이 이해가 안돼요. 정해진 기간의 이율이라는 게 있는데 그 악랄한 수법이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떳떳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대부업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그는 “정부는 눈감고” “제도권 금융은 오만한” 현실에 대해 꼬집었다. “저만 해도 피해자들한테 물어서 악덕업자들을 찾아냈는데 정부는 왜 못한다는 겁니까. 못하는 게 아니라 귀찮으니까 안하는 거죠. 맘먹고 피해사례 수집해서 찾아다니면 절반은 소탕할 수 있습니다. 왜 은행에 안 가고 사채빚를 쓰냐고요? 은행 한번 가보세요. 있는 자들에겐 저자세고 없는 자들에겐 얼마나 오만합니까. 광고할 때는 휴머니즘을 내세우고 고객 위해서 뭐든지 할 것처럼 하지만…. 위선적이죠. 돈의 단위가 다르다고 해도 몇 명의 VIP 고객만으로 은행이 굴러갈 수 있습니까? 아무리 돈장사라고 해도 상도와 윤리가 있는 건데 어딜가나 서민들만 상처받는 거죠. 은행에서 10%는 서민에게 의무대출하도록 하고 정부는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합법적인 대부업을 양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내일 자식이 수술받아야 하는데 담보없고 직장없는 사람은 어디 가서 돈을 빌리겠습니까. 현재 활동 중인 대부업체가 5만개 정도 되는데 그 중에 등록 안된 곳이 3만5000개나 됩니다. 나머지 1만5000개는 그래도 법을 지키는 곳이에요. 1만5000개 업체를 살려야 3만5000 악덕업자들이 사라집니다. 연예인들이 대부업 광고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자기는 안한다고 자랑처럼 떠드는데 그것은 무책임하고 면피하려는 것밖에 안됩니다. 서민들 사정은 조금도 생각 안하는 거예요.”
박화백은 사채피해자들에게도 몇 가지를 당부했다. “사채피해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세상에 ‘오픈’하는 겁니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알게 될까봐 숨기려고 들면 계속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법도 지켜줄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빚을 졌다면 주위에 알리고 법을 공부하세요. 조금이라도 위법적인 게 있으면 바로 신고하고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4년여 동안의 연재물을 ‘베스트 컬렉션’으로 묶어 낸 박화백은 다른 누구보다 청소년들이 많이 봐주길 바랐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관념이 확실해야 합니다. 모르면 당하는 겁니다. 제가 이 만화를 그린 것도 많은 사람들이 돈의 무서움을 알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서입니다.”
  • 이글은 실명인증이 완료된 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 목록으로
  • 글수정
  • 글삭제
  • tweet tweet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글쓴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