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즈려밟다, 금강의 진미[다시 열린 내금강 사전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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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6.15 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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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왔던 금강산은 죄다 내금강이었다. 정철의 ‘관동별곡’ 절반이 내금강 유람,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도 내금강 전경. 정말 그렇게 좋을까? 혹시 옛 사람들 특유의 과장은 아니었을까? 지난 1일 내금강 관광이 시작되면서 그 명성을 확인해 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진면목을 느끼기엔 시간이 짧다. 내금강에 주어진 시간은 5시간30분. 이동시간까지 합쳐도 하루다. 금강산 관광의 특수성 때문에 투어 형태도 한 가지. 내금산 관광객의 일정대로 트래블팀이 먼저 다녀왔다.
◇08:05 외금강 온정각
버스는 예정보다 5분 늦게 온정각을 출발했다. 내금강 관광의 기점인 표훈사까지는 44㎞. 1시간40분~2시간이 걸린다. 금강산 제일봉인 비로봉(1638m)과 옥녀봉(1423m) 줄기를 경계로 안쪽이 내금강, 밖이 외금강이다. 설악산으로 치면 인제와 속초쯤 된다. 외설악에서 미시령 넘어 내설악으로 가듯, 외금강에서는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으로 간다. 휴전선도 비무장지대도 없던 옛날엔 한양에서 철원 거쳐 곧바로 내금강으로 갔다. ‘금강산=내금강’이 된 것은 내금강이 접근하기 쉬워서가 아니었을까. 외금강까지 다시 가려면 가마 메고 고개를 넘어야 했을 테니까. 온정령은 멀미가 날 만큼 꼬불꼬불했다. 그래도 만물상을 감고 도는 길이다.
◇09:25 금강읍
‘탁아소 물자 공급소’ ‘인민약국’. 간판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북쪽 마을이 여러 곳 나왔지만 버스가 읍내를 관통하는 곳은 금강읍뿐이다. 창문마다 달린 커튼은 똑같은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잿빛의 마을은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09:55 표훈사 도착
안개가 걷히면서 표훈사 릉파루 뒤 봉우리가 윤곽을 드러냈다. 바위 끝에 소나무가 붙은 모습이 옛 그림 속 금강산이다. 표훈사는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 다른 절은 터만 남았지만 표훈사는 다행히 7개동의 건물이 남아있다. 머리 기른 스님 몇명이 있지만, 향 냄새도 목탁 소리도, 기와불사 접수처도 없다. 이정표에 따르면 묘길상까지 3747m. 왕복 7.5㎞에 2시간30분이면 거의 평지라는 이야기다.
◇10:10 금강대
갑자기 환해지더니 탁 트인 계곡과 바위다. 금강대부터 화룡담까지 1㎞가 내금강의 하이라이트 만폭동 계곡이다. 금강대 앞엔 옛 사람도, 요즘 사람도 하나같이 바위를 파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겼다. 조선 명필 양사언이 쓴 ‘만폭동’ 석자와 신선들이 바둑을 뒀다는 바둑판 앞에 사람들이 모인다. 여기서부터 크고 작은 연못 8개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진짜 출렁거리는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본 연못은 초록빛이었다. 저 정도면 선녀가 목욕하고, 나무꾼이 옷 숨겨도 뭐….
◇11:45 마하연터
만폭동 중턱에서 묘길상까지 빠른 걸음으로 20분 걸린다더니, ‘인민유격대’ 기준이었나보다. 화룡담부터 시작된 오솔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중창비만 남아 있는 마하연터에서 땀을 씻었다. “묘길상? 10분만 더 가면 큰 마애불 나와요. 거긴데, 좀 허무해요. 비로봉 갈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묘길상에서 비로봉까지는 6㎞. 그러나 갈 수 없는 미개방 코스다.
◇12:20 보덕암
“내금강 구경 오시면 다들 여기 보덕암을 노리십네다.” 사흘 전까지 외금강에서 일했다는 보덕암 안내원이 말했다. 과연 그랬다. 보덕암은 20m가 넘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작은 암자다. 내부는 토굴. 겉만 건물을 씌워놓았다. 구리기둥 하나로 건물을 받친다. 바람에 날려가지 말라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관광객은커녕 스님도 들어가지 않는다. 627년 고구려 영류왕 때 지은 암자. 현재의 건물은 1675년 고쳐 지었다.
◇1:30 점심 먹고 삼불암
고려 때 나옹선사가 바위에 새겼다는 세 불상은 금강산의 수문장처럼 보였다. 뒷면의 작은 불상 60기는 김동의 작품. 나옹을 시기해 불상조각 ‘결투’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그의 참패였다. 왼쪽 4번째 불상의 귀를 빼먹은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다른 불상들의 귀도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김동이 크게 뉘우치고 몸을 던져 죽고, 세 아들이 슬피 울다 따라 죽은 곳이 바로 울소입니다. 이 좋은 전나무 숲길을 따라 10분쯤 가시면 나옵니다.”
◇2:10 울소 앞
“내금강을 외금강과 비교하면 어때요?” “전혀 다르지. 외금강은 산을 보는 거고, 내금강은 계곡을 보는 거지. 외금강이 남성적이라면 내금강은 여성적이겠지.” “설악산 천불동 계곡이랑은요?” “길이나 풍경은 비슷한데, 여기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것 같아.”
◇2:40 장안사터
1만5000여구의 불상이 봉안돼 있었다는 장안사는 부도 하나와 주춧돌, 무릎까지 자란 엉겅퀴만 남았다. 절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이제 그만 버스에 올라야 할 시간. 북측 안내원이 다가왔다. “내금강엔 모두 8개 코스가 있는데, 남측은 만천, 만폭, 백운대 3개 코스를 가십니다. 내금강에서도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니, 기자가 그렇게 표현력이 딸려서 남측에 전달 잘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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