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포성 훑고간 지붕위로 연을 날렸다, 아이들은[‘전쟁의 땅’ 아프가니스탄 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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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6.13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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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문이 하나 있었다. 히말라야의 산줄기가 중앙아시아를 따라 내달린 고원지대의 어느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은 누런 황톳빛이었다. 만년설로 덮인 은빛 봉우리도,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숲도 양떼를 모는 목동들의 소박한 웃음도 없었다. 사각형의 흙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비탈엔 오후마다 먼지 폭풍이 불었다. 마꼴이란 전통 모자를 쓴 사내들은 흙바람 속에서도 결코 눈을 감지 않고 이방인들을 노려보았다. 가늘게 뜬 실눈이지만 눈동자에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보였다.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거기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이다. 세상 어디나 음지가 있다지만 아프간만큼 그늘이 짙은 곳도 드물다.
수도 카불공항의 활주로 바로 옆에는 부서진 전투기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버려진 전투기가 ‘아프간은 아직도 전쟁 중’란 표지판이다. 아프간에서 전쟁은 생활이다. 탈레반 시절이나, 미군이 점령한 뒤에도 총성은 멎지 않았다.
카불은 1774년 이후 아프간의 수도다. 카불엔 현지 주민과 집을 잃은 난민, 세계 각국의 NGO, 군인들이 살고 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지만 다국적군도 주민들도 결코 섞일 수 없는 기름 같다. 사는 구역도 달랐다. 카불 시내는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해외 원조로 한 귀퉁이에선 도로를 닦고 건물을 세우고 있고, 한 귀퉁이에는 포격과 총알받이가 된 건물과 집들이 부서지고 있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크로얀 언덕의 자이르 왕 사원에서 내려다본 시내 풍경은 삭막하다. 카불의 랜드마크인 19세기 사원의 천장은 총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총알에 파이고 대포에 벽이 무너졌다.
전쟁은 ‘모순’을 일상처럼 보이게 한다. 중앙분리대에 박아놓은 쇠파이프는 포탄 껍데기다. 잡초조차도 없는 산비탈, 양치기는 들로 양떼를 몰지 않았다. 초지마저 흙에 덮였다. 양은 쓰레기통을 뒤졌다. 주택가에 붙어있는 거대한 공동묘지에선 울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가족을 잃은 주민들이 코란을 읊었다. 낮고 무거운 소리 속에서 아이들이 뛰놀았다. 얘들 웃음과 코란 독경소리가 묘하게 섞였다. 포격을 받아 부서져 버린 집의 지붕에서도 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무덤 뒤편 언덕의 부서진 탱크도 아이들 놀이터였다. 거기서 술래잡기와 전쟁놀이를 했다. 시장통에서는 원조품을 빼돌려 팔았다. 세계 각국의 헌 옷과 중고품들이 들어왔다. 서울 어느 병원의 침대 시트도 있었고, 전라도 고교의 농구복도 보였다. NGO가 잃어버린 디지털 카메라도 다음 날이면 버젓이 판매대에 오른다.
아프간은 나라 전체가 ‘전쟁 기념관’이다. 역사 자체가 전쟁이다.
지리적으로 아프간은 동서남북의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는 교차지역.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였다. 서쪽으로 페르시아, 동쪽으로 파키스탄과 티베트, 북쪽으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맞닿아 있다. 해발 1500~3000m 사이의 고원지대다. 티베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군사요충지다. 역사 속의 대제국은 세력이 커질 때마다 아프간을 짓밟고 넘어갔다. 동양과 서양의 힘, 제국과 제국의 힘, 침략자와 주민의 힘이 이 땅에서 맞섰다. 아프간은 늘 충돌지점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0년 동방 정복길에 나서 아프간을 침공했다. 알렉산더는 아프간 지도자의 딸인 옥시야테스와 결혼했다. 400년에는 훈족이 동양에서 쳐들어왔다. 한나라에 쫓겨 중앙아시아에 내몰린 훈족은 세력이 커진 뒤 서진(西進)했다. 아프간을 밟고 로마제국까지 공포로 몰아넣었다. 1219년부터 1221년에는 칭기즈칸이 창을 겨눴다. 칸의 칼은 어린아이까지 도륙했다. 아프간 주민 중 10%는 하자라라고 하는 몽골계. 칭기즈칸이 남기고 간 전사의 후예다. 하자라는 몽골어로 1000명 단위의 군인을 뜻한다. 무굴제국도 아프간을 짓밟았다.
19세기에는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가 페르시아와 손을 잡고 아프간을 삼키려 했다. 영국이 이를 눈치 채고 세 번이나 아프간을 침략했다. 현대에 와선 구소련과 미국의 대결장이 됐다. 1978년 쿠데타가 일어나 아프간에 친소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저항 조직인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소련은 무자헤딘을 물리친다는 명목으로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5만명의 무자헤딘 병사를 미국에서 훈련시켰고 무기를 지원했다. 결국 9년 만에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오사마 빈 라덴도 무자헤딘이었다.
1998년 미국은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의 배후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유로 아프간을 폭격했다. 2001년 9월11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자 미국은 라덴을 잡겠다며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했다. 처음엔 미국의 완승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도 지쳐있다. 끈질긴 저항 때문이다.
아프간 사람들은 칼로 단련됐다. 강대국의 위협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19세기 영국도 아프간의 저항에 4000명의 병사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몰살 당한 적이 있다. 증오는 동족의 심장까지 겨눴다. 외세와 결탁하는 자들은 철저히 응징했다. 개종했다는 이유로 종교 지도자를 화형에 처했고, 1000년 전의 살육까지 기억해내, 앙갚음을 했다. 칸다하르의 사자라고 불렸던 마수드는 하자라 족 8000명을 컨테이너에 가둬 죽였다.
그 역시 자살 테러단에 의해 살해됐다. 아프간은 지금 엉성한 시대극 세트장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사각형 흙집 옆에 엉뚱한 유럽식 2층 집이 들어섰다. 병력이동을 위해 미군이 깔아놓은 도로의 최신식 주유소는 군벌들이 차지했다. 반면 시내 곳곳에선 플라스틱 통에 기름을 넣어서 판다. 1970년대 지어진 운동장 관람석과 트랙 사이에는 철조망이 처져있다. 낡은 천에 새 천을 대고 기우면 팽팽하지 못하고 옷감이 울듯 아프간의 모습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아프간인들의 인사말은 ‘샬롬알라이쿰’(알라의 평화가 당신에게)이다. 언제쯤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아프간에선 그저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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