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바다 폭군들의 삶 ‘진실 혹은 거짓’[낭만적인 무법자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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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6.07 10:19:37
  • 조회: 487
별이 총총히 박힌 카리브해의 밤하늘을 보며 달콤한 럼주를 들이켠다. 거친 비바람의 농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오른 뭍에는 숨겨놓은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 의족을 한 채 어깨 위에 앵무새를 얹은 선장은 흉포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멋진 남자다.
소설, 연극, 영화를 통해 재생산돼온 낭만적인 해적의 이미지다. 지금도 극장가에선 카리브해 해적들의 신나는 모험담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가 상영 중이다. 런던 국립 해양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했던 저자는 17~18세기 ‘해적의 황금기’에서 낭만의 외피를 거둬낸다. 그러므로 원제 ‘검은 깃발 아래(Under the black flag)’를 ‘낭만적인 무법자 해적’이라고 바꿔놓은 한국의 출판사는 해적에 대한 대중의 전형적인 인상에 기댄 셈이다.
사실 해적의 삶은 ‘액션 어드벤처 영화’라기보다는 ‘공포 영화’에 가까웠다. 공포 영화 중에서도 피와 살이 끔찍하게 튀는 고어 영화였다. 카리브해 해적의 대부분은 가난한 노동자 혹은 전직 해군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의 인원이 감축되자 할 일이 없어진 20대 남성들이 해적단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에게 르네상스 귀족의 품위, 근대 부르주아의 절제를 기대하기는 애초 무리였다.
‘해상 무장강도’라 할 수 있는 버림받은 이들은 온갖 잔혹한 짓을 일삼았다. 포획된 상선은 가차없이 파괴하고 반항하는 선원은 죽였다. 눈에 불타는 성냥을 넣거나 산 채로 구웠고, 손가락 사이에 도화선을 끼워넣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무 의족, 애꾸눈을 한 해적은 실제로 많았다. 격렬한 전투와 거친 해상 환경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살아남은 이들의 몸이 성치 않았으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 챕터가 할애된 여성 해적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당시에도 여성을 배에 태우는 건 불길하다는 미신이 있었다. 메리 리드, 앤 보니는 18세기 초반 카리브해에서 활약한 여자 해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내처럼 양육된 이들은 남장을 하고 배에 올라 해적질을 일삼았다. 사생활이 거의 없는 선상이었지만, 원시적인 화장실, 부패하는 목재, 바닥의 오수 속에서 여성성을 감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국 광둥의 매춘부 출신으로 19세기 초반 남중국해를 지배한 해적대장 쳉 이 부인의 삶은 더욱 흥미롭다. 해적 대장 쳉 이와 결혼한 그는 남편이 죽자 지휘권을 장악하고 남편의 양자를 애인으로 삼았다.
바다의 무법자 해적은 뱃사람들을 위협하고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다. 지도는 다니엘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의 모델인 알렉산더 셀커크가 1704~1709년에 고립되어 있던 칠레 연안의 후안페르난데스 제도.
수백척의 배로 구성된 쳉 이 부인의 해적선단은 거듭되는 정부의 토벌 노력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1810년 중국이 포르투갈, 영국 함대의 원조로 더 큰 토벌대를 꾸리자 쳉 이 부인은 능란한 협상 끝에 정부에 투항해 광둥에 정착했다.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있던 부인은 평화롭게 살다가 69세에 죽었다.
지저분하고 극악무도하며 비참했던 해적 생활이 낭만적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뭘까. 저자는 열대 이국에 대한 동경, 바다가 지닌 낭만, 해적의 무정부적 속성이 대중을 매혹시켰을 것이라 추측한다. 옛 재판 기록과 뉴스 등을 통해 해적의 삶을 생동감있게 살려냈지만, 세부 묘사를 뛰어넘는 거시적 관점은 얻기 힘들다. 김혜영 옮김. 1만3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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