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스님, 밭고기가 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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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6.07 10:17:24
  • 조회: 336
10여 년 전 어느 여름날, 순천 송광사 새벽 풍경 소리가 바람과 어울려 일렁이고 있었다. 스님들의 아침 예불이 새벽 세 시에 시작되면서 밤새 가라앉아 있던 절간 사이로 작은 옹알이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송광사 부엌(후원)에서는 두 명의 스님과 한 분의 보살님과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더벅머리 행자가 조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주방 스님들이 그날 만든 메뉴 가운데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밭고기’였다.
떠돌이 스님이 냉면 바닥에 고기를 깔아먹는다는 농담을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밭고기라는 말은 그때 처음 들어본 일종의 신조어였다. 밭고기는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 가운데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만들어 낸 기특한 음식이었다. 승보사찰 송광사에는 당연히 젊은 스님들이 많이 있고, 이 젊은 스님들이 정진에 힘쓰고 도량을 넓히며 포교와 득도를 위한 기운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영양도 좋아야 한다는 게 당시 송광사 큰스님들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스님들은 속세의 새벽 3시에 예불을 드리고, 하루 종일 정진에 힘써야 함과 동시에 밭에 나가 농사도 지어야 한다. 게다가, 속세말로 ‘풀떼기’만 먹고 살다 보니 인간 활동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고, 특히 단백질과 지방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활동량은 민간인보다 더 많고, 영양은 몹시 부족하다 보니 스님들 가운데는 지금도 예순을 넘기지 못하고 입적하는 일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단백질과 지방질을 보충한다고 고기를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니, 큰스님들로써는 여간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밭에서 나는 고기인 콩을 주재료로 한 고단백 사찰음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송광사 밭고기는 불린 콩을 갈아 전분을 섞어 거기에 각종 채소를 첨가해서 빈대떡 또는 호두파이 모양으로 찌거나 데친 음식인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나 그 모양이 마치 햄버거 스테이크와 같아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릎을 탁 치게 만들게 했다. 이래서 밭고기?
80년대 중반부터 개념 정리가 시작되었던 사찰음식은, 이후 살생하지 않으며 밥과 채소만 먹고 산다는 평상적 개념에서 벗어나, 스님의 영양을 생각하는 이른바 ‘웰빙식단’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사찰음식 전문점이 생기고 사찰음식연구회가 생겨서 보다 체계적인 메뉴 개발은 물론, 사찰음식 전문점을 내는 커리큘럼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가 생기면서 사찰음식 표준 교재 즉, 레시피를 발행하며 사찰음식 전문 조리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했던 2600년 전 석가모니나, ‘일일 일식’을 원칙으로 집도 절도 없이 자연 속을 떠돌며 수행하던 옛날 스님들을 생각하면, 이제 중생도 함께 즐기고 사랑하는 식단이 된 사찰음식을 보니 격세지감을 넘어 묘한 희열마저 느끼게 된다.
‘중생화’ 작업이 한창인 사찰음식은 지금도 집에서 어렵지 않게 해먹을 수 있다. 사찰음식의 종류는 현미죽·연시죽·비지죽·개암죽·늙은호박죽 등 40여 종의 죽과, 산나물비빔밥·버섯덮밥·야채영양소밥·톳나물밥·연잎밥 등 밥 종류가 있다. 또한 두부냉국·우거지국·냉콩국·청포묵국·양해란국 등 40여 가지의 국, 김치류, 송이버섯조림·곤약조림 등 조림류, 말린취나물볶음·죽순볶음 등 볶음요리, 가지찜·연두부찜·표고전·녹두부침 등 부침류, 버섯튀김·깻잎튀김·늦싸리부각·들깨송이부각·표고구이 등 튀김과 구이류 등, 알고 보면 일반인의 식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단, 어떤 음식에도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하면 다싯물을 만들며, 마늘·파·부추·달래·무릇(흥거) 등 오신채(五辛菜)를 양념으로 넣지 않는다. 따라서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며 뒷맛이 깔끔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사찰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거의 100% 제철음식이라는 것이다. 절 앞의 밭에서, 뒷산에서, 앞바다 자연이 주는 식재를 이용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찰음식 메뉴 가운데 일반인도 좋아하는 메뉴로는 연잎밥과 청포묵국, 표고구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연잎밥은 찹쌀을 불린 후 식성에 따라 밤, 대추, 잣 등을 넣고, 깨끗한 연잎에 먹기 좋은 사이즈로 싸서, 실로 단단히 묶은 뒤 쪄서 먹으면 된다. 이럴 경우 맛이 너무 밋밋해질 수밖에 없는데, 은은한 자극을 원한다면, 참기름이나 간장을 살짝 첨가해서 찌면 어느 정도 간 맛이 난다. 간단히 해먹고 싶은 사람은 불린 찹쌀에 밤 등을 첨가해서 압력밥솥에 밥을 해서 식성에 따른 가벼운 양념을 섞어 준비한 연잎에 싸서 먹으면 된다. 조리법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지만, 문제는 연잎이다. 연잎은 인터넷이나 동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가 없다. 대형 농수산물시장이나 규모가 꽤 큰 재래시장에 가야 구할 수 있으며 5월 말부터 구입 가능하다.
청포묵냉국은 사찰음식을 떠나서라도 초여름 입맛을 돋우는 메뉴이다. 동네 마트에서 청포묵 한 모를 사다 곱게 채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다싯물을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둔다. 차가워진 다싯물에 청포묵을 넣고 소금이나 간장 등으로 간하여 얼음 두어 개 떨어뜨려 먹으면 시원한 청포묵을 즐길 수 있다. 사찰음식으로서의 청포묵냉국이 너무 싱거운 사람은 다싯물 대신 멸치국물을, 소금이나 간장 대신 실파, 홍고추, 청양초를 얇게 썰어 넣어먹어도 좋다. 냉국이 싫은 사람은 끓는 물에 넣어먹어도 맛있다. 이 경우 달걀을 풀어 함께 먹어도 맛있다.
사찰음식은 서울 인사동과 고양시 벽제 보광사 입구에 있는 산촌(인사동 02-735-0312, 보광사 입구 031-969-9865), 삼청동 감로당(02-3210-3397), 대치동 채근담(02-555-9173)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사찰음식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유명사찰의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제대로 된 사찰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또는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아가 오랜만에 산책과 사색을 즐기고, 가족의 건강도 기원하며, 사하촌 식당에서 사찰음식 한 끼 먹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공양도 수행이요, 정진이다. 당신이 오늘 아침밥을 깨끗이 비우고 감사한 마음과 미소 띤 손길로 설거지까지 끝냈다면 그곳이 바로 보리수나무 아래다. 좋은 음식 드시고 성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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