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한국을 ‘내몸처럼 아파했던’ 사람들 이야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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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6.04 0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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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이 열렸을 때였다. 인혁당 관계자의 부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도와준 모든 분들께, 특히 월요모임 선교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시름했던 197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은 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인혁당 사건 등 중요한 사안마다 민주인사를 지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월요모임’ 선교사들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겪은 일들을 다룬 ‘시대를 지킨 양심-한국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나선 월요모임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펴낸 이 책은 문동환 목사의 부인인 페이 문여사와 조지오글 목사, 짐 시노트 신부 등 14명의 선교자들이 썼다.
‘월요모임’은 70년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도움을 주었던 미국,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의 모임을 말한다.
박정희 정권의 억압 통치 아래에서 체포, 고문을 당하는 한국인 동료들을 본 선교사들은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0명 안팎의 선교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거실에 둥글게 모여 앉아 한국인들이 당하는 굴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고향에 편지로 보내는 일이 전부”였던 이 모임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외신기자들이 월요모임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의 상황이 해외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외국 언론의 기사를 몰래 들여와 한국에 배포하고 정치범 목록, 고문 보고서, 민주화 선언문 등의 자료를 한국 밖으로 내보냈다.
또 월요모임 선교사들은 도시산업선교회 등과 연계해 빈민과 노동자 지원활동을 벌였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침묵하는 가운데서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선 이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월요모임 회원들은 한국 국내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압력을 동료 선교사로부터, 미국 의회의원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왜 악에 대해 용기내 발언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오히려 설명했다. “신약성서에 명시돼 있듯 복음과 사회활동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될 수 없는 것을 일부 기독교인들은 왜 분리하려 하는가.”
월요모임의 회원수는 적었지만 영향력은 컸다. 외국인이면서 종교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상대적으로 쉽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의 탄압을 모두 비켜갈 수는 없었다. 월요모임 회원 중 두 명이 추방당했다. 회원 중 세 명은 한국인인 남편이 고문과 투옥을 당했다. 일본 외신기자 클럽 소속으로 월요모임을 통해 한국상황을 접했던 언론인 짐 스텐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월요모임 회원들 대부분이 한국인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였다. 마지막으로 본국에 돌아갔을 때 선교사들은 타인의 삶을 변화시킨 것만큼, 자신들의 삶에도 변화를 겪었다.”
선교사 14명이 직접 기록한 당시의 경험들은 스스로도 미처 예감하거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놀라움도 포함하고 있다. 저자들은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자신들이 단순한 선교의 차원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나서기까지의 내면적 성장과정을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전하고 있다.
70년대에 고문당하고 투옥됐던 ‘범법자’들이 이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희생했던 투사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이들에게 자랑이자 기쁨이 됐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발6간사에서 “특권을 버리고 모든 것이 열악했던 한국으로 와 민주화를 도왔던 선교사들의 인간애를 잊어선 안된다”며 “불과 20~30년 전 과거를 잊고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삶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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