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프로야구 최연소 1500안타 장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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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5.31 09: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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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 소년은 학업은 물론 세상의 그 어떠한 진지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밤마다 오토바이를 탔다. 숙명여대 근처가 주무대였다. 그렇다. 폭주족이었다. 영화 ‘비트’의 주인공 정우성처럼, VF의 뒤쪽 쇼바를 잔뜩 올리고, 오토바이의 속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한 채 밤마다 굉음을 뿌리며 원효로를 달렸다.
13년이 흘렀다. 폭주족 소년은 야구선수가 됐고 한국 프로야구 최고 타자 중 한 명으로 컸다. 최근 잠실 두산전에서 프로야구 최연소 개인통산 1500안타 기록을 세웠고 10년 연속 타율 3할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노리고 있다. 바로 KIA 장성호(30)다.

-폭주족 경험이 있다는데 뜻밖이다.
“충암고 1학년때, 갑자기 야구도 공부도 하기 싫었다. 아침에 학교 가서 가방 던져놓고 바로 만화가게로 갔다. 거기서 라면 시켜먹고 오후에는 당구장으로 갔다. 밤에는 명지대 뒤편에서 친구들하고 깍두기 안주에 맥주 사서 마셨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탔다. 그래도 뒤에 여자는 안 태웠다. 싸움도 안했고.”
-그렇게 망나니 짓을 했는데 다시 받아주던가.
“고3 직전 겨울이었는데, 놀다 놀다 지쳤던 모양이다. 갑자기 인생이 막막했다. 야구부 전지훈련 장소로 내려가 다시 하겠다고 빌었다. 정용락 감독님이셨는데, 맞지는 않았고, 남들 훈련할 때 하루 종일 오리걸음을 했다. 1주일 동안이나. 딱 3개월 훈련하고 대통령배 나갔는데 첫 경기에서 홈런 2개를 모두 밀어서 때렸다. 상대 투수가 누군지 아나. 휘문고 김선우였다. 그해 봉황기에서 (박)명환(LG)이가 6경기 5승하면서 우리가 우승했다.”
-최연소 1500안타다. 안타 비결이 있나.
“96년 해태에 입단했을 때 잘 못쳤는데도 김응용 감독님이 오랫동안 기용해주셨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오게 됐다. 난 수비보다 공격에 더 신경쓴다. 야구가 점수 내야 이기니까 수비는 딱 필요한 만큼만. 요즘에는 저녁에 ‘복기’를 많이 한다.”
-외다리 타법이 좀 독특하다.
“다리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다. 컨디션 좋을 때는 오른발이 가슴에 막 닿고 그런다. 가끔 발로 포수 미트를 건드릴 때도 있다. 97년 전반기 끝나고 김성한 코치님이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당시 1할9푼7리였던 타율이 다리 올리고 나서 2할6푼8리까지 올랐다. 어 되네, 싶어서 진짜 연습 많이 했다.”
-10년 연속 3할을 노리고 있다. 2005년에는 위기였는데.
“2경기 남겨두고 2할9푼6리였다. 안타 1개라도 더 치려고 1번타자로 나가게 해 달라고 했다. 그날 4타수 3안타를 때리고 반올림 3할(0.2995)을 채웠다. 긴장이 풀렸는지 마지막 잠실 경기는 못 나가겠더라.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다. 올해는 개막전부터 말하지 않았나. 절대 비겁하게 치지 않겠다. 컨디션도 좋아지고 있다.”
-올해도 초반에 좋지 않았다.
“조급하다 보니까 첫 15경기에서 잘 못쳤다. 부산 원정이었는데 일부러 타격 훈련을 안했다. 그러고선 (손)민한형한테 홈런을 때렸고 이후 타격감이 돌아왔다. 잘 안될 때 타격훈련을 하면 오히려 잘 안맞아서 짜증날 때가 많다. 잡생각이 없어야 야구 잘되더라. 아예 10일 동안 타격훈련 안했다.”
-장성호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가 있다면.
“나 발 그렇게 느리지 않다. (양)준혁이 형처럼 뛰는 폼이 이상해서 그렇지. 어깨도 괜찮은 편이다. 외야수비? 2004년에도 62경기 뛰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워낙 긴장해서 마쓰자카한테 삼진 3개 먹었지만 이후에는 국제 대회 성적도 좋았다.”
-언제까지 야구 할 건가.
“3000개는 좀 무리고, 2500안타는 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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