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여린 뼈의 뒷맛 오도독 작렬[제철 맛여행 세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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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5.23 09: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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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 파인 사발에 먹기 좋게 썬 생선과 양념이 어우러져 마치 늪지의 여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입맛을 한번 다시고 숟가락을 그릇에 쑤욱 넣어 아랫 동네를 쓱쓱 휘젓고, ‘깔짝깔짝’ 세꼬시를 숟가락에 올리고 국물을 적당히 섞어 입으로 가져간다. 새콤한 양념 맛이 먼저 혓바닥을 간질이고, 이어서 물컹하고 ○○○히는 살코기의 첫 느낌. 이때 이에 힘을 조금 주면서 살짝 ○○○어주면 오도독 작렬하는 여린 뼈의 뒷맛이라니!
물회의 냉수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그냥 회를 쳐서 버무려 먹는다. 적당히 걸죽한 초장에 얄미울 정도로 송송 썬 깨끗한 청양초를 넣고, 거기에 다진 마늘 한 숟갈과 토종 기름을 넣어 휘휘 섞어 장을 만들고 세꼬시 한 젓갈을 넣어 마구잡이로 비벼준다. 그리고 상추에 한 젓가락 올리고 땅콩가루를 살짝 뿌려 막장에 푹 찍어서 한입 먹는다. 그러면 이미 온몸이 각종 맛으로 비벼지다가 결국 세꼬시 특유의 오도독 소리와 함께 벌써 젓가락은 다음 세꼬시를 향해 가고 있다.
세꼬시의 절정기다. 세꼬시는 아직도 그 어원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국어사전에도 세꼬시라는 말은 없다. 확실한 것은, 세꼬시가 생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세꼬시가 어떻게 생긴 물건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세꼬시는 어린 생선을 뼈째 썰어서 물회, 무침 또는 회로 먹는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명태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한 것이 황태인 것처럼, 청어나 꽁치를 역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 과메기로 부르는 것처럼, 세꼬시도 그렇다는 말이다.
세꼬시가 어린 생선을 뼈째 먹는 것이라고 해서, 모든 어린 생선이 세꼬시가 될 수는 없다. 세꼬시로 먹기 좋은 생선은 따로 있다. 맛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무엇이 으뜸이며 어떤 것이 버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장한다. 최고의 세꼬시는 역시 도다리 새끼라고. 그리고 광어, 가자미도 훌륭한 세꼬시다. 고급 식당에 가면 요즘은 자리돔 새끼로 세꼬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세꼬시가 5월에 제철을 맞는 것은, 지난해 가을과 겨울 산란기 때 세상에 나온 도다리, 가자미 새끼들이 4~5월을 맞아 먹을만한 크기로 자랐기 때문이다. 1월이나 2월에는 어린 생선을 잡을 수도 없고, 잡았다 해도 뼈가 너무 물러서 제 맛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뼈가 어지간히 여문 4월이 지나면 도다리, 광어, 가자미가 본연의 맛과 향을 갖춤은 물론 세꼬시의 필수 조건인 오도독 ○○○히는 느낌도 제대로이다.
도다리 세꼬시가 좋은 이유는, 도다리야말로 100%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도다리가 자연산밖에 없는 이유는, 도다리 양식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놈이 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3~4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투자해서 양식해봤자 본전도 남지 않을 게 뻔하지 않겠나. 해서 4월부터 6월 사이에 그물을 훑어 잡게 된 것이다.
도다리나 가자미는 낚싯배를 타고 나가 직접 잡아 배 위에서 회를 쳐 먹는 게 제일 좋은 제철 맛여행이다. 여수, 진해 등 서남해에서는 요즘 도다리 낚시가 한창이다. 낚시에 관심이 없다면 진해, 여수 어항 근처 식당에 가면 얼마든지 싱싱한 세꼬시를 맛볼 수 있다. 진해는 해안도시이지만 천자봉, 용추폭포 등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등산코스가 있어서, 겸사겸사 다녀올 만한 여행지다. 군항제가 끝난 뒤라 인파에 시달리는 일도 덜해서 좋다. 장복산 공원 근처에는 파크랜드도 있어서 아이들도 즐거운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여수 또한 세계박람회 유치를 준비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깨끗이 정비되었고, 오동도, 거문도, 백도 등 아름다운 한려수도를 감상할 수 있는 평화로운 여행지다.
세꼬시는 다른 음식에 비해 산지뿐 아니라 서울 수도권에도 비교적 많은 양이 올라와 먼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일산 대화역 근처의 ‘노랑가자미세꼬시’(031-911-4992)는 자연산 가자미로 깔끔한 세꼬시를 제공하는 집으로 일산 사람들은 물론 서울에서도 원정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백석역 근처의 ‘도다리네’(031-901-1210)는 원래 수원이 본점인데, 그 유명세를 업고 일산에 문을 열어 지역을 거의 평정한 세꼬시 전문 횟집이다. 죽전의 ‘세꼬시전문점’(031-898-0908)은 분당 일대에서 유명한 집이며, 서울 강남역의 ‘잡어와 무근지’(02-581-9294)는 ‘식객’의 작가 허영만 등 공력 깊은 미식가들이 즐겨찾는 집이다. 이렇게 유명한 집들이 아니더라도, 동네 어귀 물회를 파는 집에 가면 대략 맛있는 세꼬시를 쉽게 맛볼 수 있다. 세꼬시가 생선이 아니라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오도독 세꼬시에 소주 한 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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