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공연] 한국연극의 ‘새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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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5.22 08:59:26
  • 조회: 490
>> 국내유일 연극동인 ‘혜화동 1번지’

시작은 작은 연습실이었다. 연출가 김아라의 연습실에 몇몇 동료들이 “같이 쓰자”며 뿌리를 내린 지 만 13년. 겉에서 보면 초라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 볼품없는 외관은 여전하지만 연극하는 사람들 누구도 이곳을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객석과 무대뒤편까지 합쳐봐야 20여평 남짓인 이 곳에서 끊임없이 새 작품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들. 사진왼쪽부터 김혜영, 박정석, 김재엽, 김한길씨.
혜화동 로터리 골목에 자리잡은 이 소극장의 이름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다. 1994년 기국서, 이윤택, 김아라, 박찬빈, 류근혜, 채승훈, 이병훈 등 당시 40대였던 연출가 7명이 모여 연출가동인집단 ‘혜화동 1번지’를 출범하고 김아라 연출의 연습실을 동인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극장으로 만들었다. ‘상업적 연극에서 벗어날 것’ ‘연극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개성강한 실험극을 무대에 올릴 것’ 등을 기본 방향으로 세웠다.
현재 4기까지 이어오면서 ‘혜화동 1번지’는 많은 화제작과 인물을 배출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2기 동인인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과 이성열 연출의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잡았고, 손정우 연출의 ‘사랑의 기원’도 ‘70분간의 연애’라는 흥행작으로 거듭났다. 3기 동인인 김낙형 연출의 ‘나의 교실’과 양정웅 연출의 ‘미실’ ‘환’ 등도 혜화동 1번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김낙형 연출의 ‘지상의 모든 밤들’은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바티칸까지 진출한 양정웅 연출의 ‘한여름밤의 꿈’ 역시 혜화동 동인 시절에 만든 작품이다. 4기 동인인 김재엽 연출의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김한길 연출의 ‘임대아파트’는 마니아를 만들 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서울예술단 대표감독 이윤택 동인(1기), 전 연극협회 회장 채승훈 동인(1기), 아르코예술극장 예술감독 최용훈 동인(2기), 현 연극협회 부이사장 박장렬 동인(3기) 등 기수별로 연극계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시작할 때는 ‘가능성 있는 연출가’ 정도지만 동인활동이 끝날 때쯤에는 다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 만큼 ‘바쁜 연출가’로 성장하는 것도 혜화동 1번지의 흐뭇한 전통이다.
‘혜화동 1번지’의 힘은 뭘까. 첫번째 힘은 비용 걱정, 흥행 부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관형식이지만, 함께 돈을 모아 운영하고 소극장이다보니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인 극장대관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양정웅 동인은 “너무 힘들어서 연극을 잠깐 접으려고 하던 차에 동인이 돼서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에게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된다”며 “‘혜화동 1번지’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 다해보자고 결심했고 실제로 다작을 했다”고 말했다. 최용훈 동인은 “한 극장을 매개로 각 연출가가 이끌고 있는 극단이 모이다보니 서로 자극도 받고 배워가는 게 많다”고 말했다. 혜화동 1번지는 매년 한번씩 같은 주제로 각 연출가들이 다른 작품을 발표하는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현재 ‘미스터,리가 수상하다’라는 주제로 4기 동인들의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두번째 힘은 동인집단이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자체정화를 한다는 데 있다. 동인 자격은 보통 3년에서 길게는 5년이 지나면 다음 기수에 물려준다. 선배들이 좋은 여건을 ‘독식’하지 않고 ‘혜화동 1번지’가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무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2기들은 1기들이 자진해산한다는 소식에 ‘물려달라’고 찾아갔고, 3기부터는 앞 기수가 후배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동인을 뽑고 있다. 만장일치의 동의를 구하되 누가 누구를 추천했는지는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혜화동 1번지 4기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는 이수현 기획은 “이미 연극계에서 상당한 이름값을 하고 있지만, ‘혜화동 1번지’ 출신이라는 것을 특별히 내세우거나 사조직화하지 않으려는 것이 동인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후배들의 페스티벌 기간에도 선배들은 우르르 몰려가 관람하지 않고 혼자 가서 슬쩍 보고 나오는 식이다.
‘관객모독’으로 유명한 1기 기국서 동인은 “그들이 알아서 자생적으로 자란 것”이라며 ‘선배의 공’을 부정하면서도 ‘혜화동 1번지의 정신’을 이어주기를 부탁했다. “연극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자꾸 돈탓을 하는 수가 생기죠. 원래 연극은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저질렀으면 좋겠습니다. 거긴 젊은 사람들이 ‘획책’하기에 아주 좋은 분위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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