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져/여행] 보았네 연두빛 우주[백양사 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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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5.11 09:02:50
  • 조회: 308
전남 장성 백양사 숲길의 졸참나무가 잎눈을 맺은 것은 지난해 늦은 가을이었다. 자지러질 듯 흐드러진 애기단풍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돌아간 뒤였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봄은 더뎠다. 섬진강변에서 꽃소식이 들렸지만, 성급한 꽃들은 매운 봄바람에 멍들어 떨어졌다고했다.
잎눈은,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던 지난달 중순에야 조심스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 빛을 본 새 잎들은 새끼 손톱만큼 자그마했다. 늙은 나뭇가지에 달린 새 잎들은 멀리서 보면 하얀 먼지 알갱이처럼 반짝거렸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연둣빛 잎사귀를 감싸고 있었다. 단풍나무의 새 잎도 빠알갛게 올라오고 있었다. 작고 여린 것들은 그렇게 강한 햇볕과 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의 ‘빠알간’ 어린 것처럼.
며칠 밤이 지났다. 졸참나무의 하얀 잎은 연둣빛으로 변했다. 단풍잎은 동전만큼 자라 하늘 꼭대기에 연둣빛 별처럼 박혔다. 갈참나무의 새 잎은 햇볕 아래 올리브빛으로 흔들거렸고, 창검처럼 삼엄한 비자나무에도 새 잎이 돋았다. 다 자란 진초록 잎은 건드리기만 해도 따끔거리는데, 이 어린 것은 왈칵 움켜쥐어도 아프지가 않다.
나무에 따라, 크기에 따라, 햇볕의 방향에 따라 새 잎의 빛깔은 달랐다. 봄의 숲은 연둣빛의 모자이크였다. 아기 손바닥 같은 잎들이 바람에 날릴 땐 사그락, 사그락 숨 죽인 웃음소리가 났다. 이 어린 새 초록(新綠)은 한달이면 짙은 초록으로 무성해질 것이다. 황홀한 연둣빛은 봄과 여름 사이의 찰라다. 그늘까지 연둣빛으로 물든 백양사 숲길에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봄날은 간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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