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좋아서, 그냥 무대가”[두 젊은 배우 김지연·김진곤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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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5.02 09: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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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돈 안 된다. 대부분 명예도 없다. 그럼에도 대학로엔 배우가 되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왜 알면서도, 가난한 연극쟁이의 길을 택했을까. 그 많은 젊은 배우 가운데 극단 ‘여행자’의 김지연(31·위 사진 오른쪽)·김진곤씨(31·왼쪽)를 서울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났다. 망설임 끝에 그들이 내놓은 답은 결국 “좋아서”였다. “그냥, 배우로 늙어가고 싶어요. 언제까지나 무대에 있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1년 동안 스태프만 시킬 수도 있다”
2005년 가을. 신입단원 오디션에서 극단 대표 양정웅씨는 지연씨에게 물었다. “1년 동안 무대 못 서고 스태프만 할 수도 있어요. 괜찮겠어요?”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마다할 리 없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연극이 하고 싶어 학교까지 중퇴하고 연극판에 뛰어든 지연씨였다. 같은해 3월 입단한 진곤씨는 이 극단 ‘4수생’이었다. 두 사람을 뽑은 양대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고프나 배부르나 열심히 할 것 같아 뽑았다”고 했다.
◇경력 6년의 막내단원
극단 ‘여행자’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전통극 형식으로 각색한 ‘한여름밤의 꿈’으로 유명한 대학로의 극단이다. 이 작품을 2005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지난해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연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2005년 입단한 두 사람은 30여명 남짓한 단원 중 막내다. 극단 경력 만 2년. 대학 때부터 연극판을 기웃거렸으니 연극 경력은 5~6년이다. ‘중견배우’라는 단어에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배우 구실’ 하려면 10년은 배워야 한단다.
◇3명 가운데 1명은 빠져나간다
각 극단이 예년보다 신입 단원을 적게 뽑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뽑아 놓아도 3명 중 1명, 많으면 2명 중 1명이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 작품 별로 배우를 뽑아 공연하는 프로젝트성 공연이 늘어나면서 프리랜서 배우도 크게 늘었다. 두 사람처럼 극단에 전속돼 공동체 방식으로 배우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추세다. 지연씨의 극단 동기 한 명도 입단 직후 그만뒀다. “집안 사정일 수도 있고, 경제 문제일 수도 있고…. 5년쯤 해 보다가 나가는 사람들 많아요.”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8시간 연습
회사원과 마찬가지다. 주 5~6일, 하루 8시간 연습한다.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8시간 동안 뛰고, 구르고, 재주넘고, 춤추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요즘 두 사람은 오는 5월12일부터 공연하는 ‘한여름밤의 꿈’ 연습에 한창이다. 지난해엔 비중이 적은 코러스 역을 맡았지만, 올해는 대사도 있는 ‘주요 배역’이다. 연출자가 진곤씨를 붙들고 지도하는 동안 지연씨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손바닥을 쫙 펴고 놀란 표정을 10번도 넘게 지어보인다.
◇“월수입 97만원이면 적금 붓고 살겠네요”
2004년 한국연극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연극인 1인당 월수입은 97만원.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돼요. 그 돈이면 학원 다니고 적금 부으며 살겠네요.” 이들의 연봉은 300만~400만원. 한달 30만원 꼴이다. 공연 때 받는 개런티가 전부다. 연극 배우 대부분은 탈춤강사, 식당 종업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진곤씨는 “인형 탈 쓰고 행사장에서 분위기 띄우는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간’ 인형을 한 적이 있어요. 몸 속에 있는 그 간. 제약업체 행사였는데 그 탈을 쓰고 남산을 한바퀴 돌았죠.”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배부른’ 극단이지만 극단의 형편도 빤하다. 바비칸센터 공연 땐 경비를 줄이려고 밥솥까지 챙겨갔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 도리 못하죠”
기꺼이 가난하기로 작정한 인생. 그러나 가족에겐 언제나 미안하다. 처음엔 극심하게 반대하던 부모님도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애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않는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경제 사정 탓에 두 사람 모두 부모님과 함께 산다. “아파도 집에 가서 아프단 소리를 못해요. 부모님 반대 무릅쓰고 배우가 되겠다고 했으니까.”
◇영화배우 되려고 연극배우 한다?
최근 젊은 배우들이 연극을 영화나 뮤지컬의 교두보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 지연씨는 “말이 안된다”며 어깨를 움츠렸다. “연극, 영화, 뮤지컬은 장르가 다르잖아요. 연극 연기는 연극에서 배우고, 뮤지컬 연기는 뮤지컬에서 배우는 것 아닌가요?” 진곤씨가 맞장구쳤다. “연기 수업을 위해 연극을 거칠 정도로 연극이 예술적으로 우월하다면 왜 다른 장르로 가는 거죠?”
◇그래, 나는 대학로의 무명배우.
어차피 알고 시작했다. 그들을 흔드는 것은 가난도, 주변의 반대도 아니었다. 처음 결심했을 땐 ‘내게 재능이 있을까’ 불안했고, 지금은 ‘배우란 과연 무엇인가’로 고민한다. 지연씨는 “지금까지 배우에 대해 개념만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며 “실제의 배우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의 나는 ‘이름 없는 대학로의 한 배우’일 거예요. 앞으로도요. 그렇게 정리하니 홀가분하더라고요.”
◇왜 연극을 하나, 그 질문 어렵네요!
그럼에도 그들은 왜 연극을 놓지 않는 것일까. 진곤씨는 “관객이 객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연 직전, 긴장 때문에 배가 사르르 아파오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강백 선생님의 ‘느낌, 극락같은’이란 제목의 작품이 있어요. 처음 연극을 봤을 때 느낀 기분이 바로 그 ‘극락’이었어요. 가끔 생각해요. ‘맞아, 나 연극 좋아하지. 잊어버릴 뻔했네, 이 극락 같은 느낌을.’” 지연씨는 “예전엔 세상을 쉽게 살지 않으려고 연극을 선택했다고 대답했다”고 입을 뗐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게 제일 쉬운 방법 같기도 해요. 좋아하는 걸 하는 거잖아요. 아, 그 질문 답하기 어렵네요.”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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