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애절하다, 길위의 예인들[진옥섭의 예인명인-노름마치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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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4.24 09: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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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최초, 최고, 최장, 최다…. 좀더 가슴아픈 불행 스토리를 찾고, 이왕이면 왕창 무너지게 웃기는 기사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고 싶을 터이다. 이 책에 담긴 예인들의 이야기. 감동스토리를 찾아 헤매는 욕심꾸러기 기자들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겠다. 그만큼 애절하다. 솔직하다. 그건 노름마치들이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낯선 예인들, 기생 무당 광대 한량들이 간직한 몇 개의 절절한 장면은 순수의 벽을 넘어 전통의 치열한 존재성을 정확히 관통한다.
책 제목 ‘노름마치’는 ‘놀다(노름)’와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이다. 최고의 재비(연주자)를 뜻하는 남사당패 은어. 노름마치가 한판 놀고나면 그 누가 나서도 노름마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판은 끝난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중의 고수가 노름마치. TV 가요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를 이전에는 이미자와 조용필이, 요즘은 슈퍼주니어나 비가 장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지은이 진옥섭씨(전통예술 연출가)는 영화 ‘왕의 남자’ 주인공들의 춤선생이었다. 이 책에선 구수하고 여울진 글솜씨로 알려지지 않은 예인들의 사연과 예술을 추적하고 그들을 무대로 이끈 기록을 담았다. 책 속 주인공들을 만나기 위해 조바심과 고단함을 벗삼아 5년 동안 준비했다. “이런 저런 시련에 닥칠 때마다 ‘대갈빡 벽에 쾅쾅 부딪히며’” 발품을 팔았다. 길 떠나는 그의 가방엔 소형 녹음기가 들어있다. 일제 강점기의 엔카를 녹음해 노(老)예인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의 눈빛을 재빨리 스캔한다. ‘아! 할머니는 기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셨구나.’ 순간 그는 예인의 아픈 추억을 와락 껴안는다.
재치있는 창무극의 1인자 공옥진(76), 중고제를 잇는 유일한 소리꾼 심화영 할머니(94)와 조카 가수 심수봉, 마지막 유랑광대 강준섭(75) 부부, 신내림으로 소박당한 무당 한부전(76),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는 하보경(1906~97)과 종손 하용부, 소리하는 동래기생 유금선(88)… 예인 18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리나라 근대예술사이기도 하다.
‘민살풀이춤’을 추는 장금도 할머니(79)는 군산 소화권번 출신 기생이다. 지은이가 기획한 춤공연에 나서며 60여년 동안 비밀로 묻어왔던 춤을 다시 꺼냈다. 기생으로 팔려가라고 지어준 이름 금도. ‘먹고 살기 위해 소리 배우고, 춤 배웠다.’ 16세에 군산 최대 요릿집 명월관에서 40명 동기들이 치른 졸업시험. 소리와 춤 장르를 모두 수석졸업했고 1급 허가증을 받았다. 서울 종로 요정가에서도 탁월한 춤솜씨로 재물을 모았다. 그러나 며느리를 맞기 전 과거를 지워야 했다. 늙은이들 앞에도 나서지 못했다. 혹여 자신을 알아볼까봐.
문익점의 26대손 문장원옹(90)은 마지막 동래한량이다. 요정에서 함께 놀던 100여명 기생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그는 즉흥 입춤의 멋을 흩뿌리며 1930년대 풍류를 들려준다. “못된 소질이 있었던 게야.” 기생들에게 배운 자신의 춤을 ‘못됐다’고 고백하면서도 춤만 바라보고 산다. 정녕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자락이기에.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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