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달려!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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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4.23 09:14:15
  • 조회: 234
‘호모나이트쿠스’라고? 천만에 생존에 밤을 빼앗긴 사람들

직장인 박모씨(38)는 올해 초 ‘투잡(two job)’을 시작했다. 집을 담보로 잡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직장 선·후배들과 합쳐 서울 대학로에 고깃집을 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월급에 안주하는 직장생활만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이다.
“40살이 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있으면 마흔인데, 월급쟁이로 끝까지 간다는 보장도 없고 이대로 가면…. 인생 역전이란 게 주어진 일만 해서는 꿈이라는 생각이 컸지요.”
투잡을 시작하면서 생활의 리듬이 바뀌었다. 아침 8시를 전후해 서울 세종로에 있는 직장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근무하고 바로 가게로 나가 새벽 2~3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저녁 시간대는 ‘업무 종료’이자 휴식시간이지만 박씨에게는 제2의 근무시간이다. 7시간 자던 잠도 3~4시간이 고작이다. 모자란 잠은 점심을 후딱 먹고 쪽잠을 자거나 버스를 탈 때 보충한다. 머리는 대학로 근처에서 심야 영업하는 미장원에서 해결한다.
그에게 ‘호모나이트쿠스’가 됐다고 하면 “말도 안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호모나이트쿠스는 국립국어원에서도 공식화한 단어로 밤에 활동하는 인구집단을 말한다. 심야 쇼핑족이 늘고 심야영화 등 밤문화가 발달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밤이라는 시간 안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표적이랄 수 있는 야간 관광문화는 서울시만 해도 800여 개가 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1998년 심야영업 규제가 폐지되면서 밤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건 즐기는 사람들 얘기죠. 저는 ‘노동’을 하고 있어요. 심야 인프라가 늘었다고 하지만 제가 이용하는 것은 미장원이나 찜질방이 고작이에요. 찜질방도 찜질이 아니라 피로를 풀려고 사우나를 하러 가는 것이 고작이죠.”
밤을 즐기거나 밤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낮시간, 노동의 연장인 이상 ‘호모나이트쿠스’라 구분 짓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가 투잡을 시작한 것은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IMF 외환위기인 1998년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해 올해까지 9년째 월급쟁이로 산다. 큰 아이는 올해 8살로 대학에 입학할 때 박씨는 49살. 군대 갔다와서 학부만 졸업한다고 해도 56살가량이 된다. 이제 4살 된 둘째의 미래까지 생각하면 회사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생존’한다 해도 자식들 교육비를 댈 자신이 없다. 게다가 입사한 순간부터 줄줄이 퇴출되는 선배들을 보아왔다. “일만 열심히 하면 돼”라고만 믿고 살기엔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다.
“지금도 제대로 가르치려면 한 달에 100만원은 써야 하는 데 부모님 모시고 맞벌이를 한다 해도 쉽지 않은 액수죠. ‘열심히’ 산다고 보장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투잡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 더 해야하나 고민 중이에요.”
투잡을 시작하면서 하루에 얼추 20시간을 일하는 박씨는 이마저도 부족해 인터넷으로 짬짬이 할 수 있는 제3의 부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박씨에게 밤을 빼앗아 갔다.
박씨처럼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연간 노동시간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스위스계 투자 은행 UBS는 지난 2006년 8월 세계 71개 주요 도시 중에서 서울이 노동 시간이 가장 길다고 발표했다. UBS는 3년마다 ‘물가와 수입’ 보고서를 내놓는데 당시 보고서에서는 서울 시민들이 연간 2317시간을 일해 노동 시간 세계 1위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2위는 멕시코시티(2266시간), 3위는 홍콩(2231시간)이 차지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말하는 프랑스 파리는 1481시간으로 꼴찌를, 일본 도쿄는 1954시간으로 24위에 올랐다. 그만큼 한국은 ‘노동의 대가’가 짜다.
앨런 존슨은 “산업화가 ‘시간 잉여’에서 ‘시간 궁핍’의 사회로 진행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면서 주5일제를 도입하고 노동 유연성 등 ‘선진화’를 꾀했지만 정작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연장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뜻이다.
투잡을 시작하면서 박씨는 행복은 내일로 미뤘다. 그러나 결과는 ‘공허’다. 박씨가 시간을 쪼개, ‘24시간 인간’으로 산다 해도 미래가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양대 김찬호 교수(문화인류학)는 “집값·교육비가 상승하니까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 더 투자하고 삶을 즐기기보다 아직도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이 유난히 경쟁이 치열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연합뉴스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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