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삶의 지혜일까 속임수일까[컨닝, 교활함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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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4.20 08: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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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시험 부정행위’로 더 익숙한 ‘커닝’(cunning)이란 영어 단어는 ‘교활함’을 뜻한다. 그러나 그 어원은 ‘지식’과 관련있는데, ‘안다’는 뜻의 ‘can’에서 비롯됐다. 18세기 중반 새뮤얼 존슨의 ‘사전’에서도 ‘cunning’을 ‘숙련된, 알고 있는, 가르침을 받은’ 등으로 먼저 정의한 뒤 ‘교묘하게 속이는, 비열한, 계획적인’ 등으로 설명했다. 그 의미가 ‘지식’과 ‘속임수’에 걸쳐 있는 셈이다.
‘교활함’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도덕적으로는 비난하면서도, 한편에선 목적을 달성하는 영리함을 부러워한다. ‘교활함의 화신’이라 할 만한 오디세우스를 보라. 그가 귀향길의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오디세이아’의 중심에는 교활함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은 본받아야할 모범으로까지 칭송된다. 교활함의 대명사처럼 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주목받는 건 또 어떤가.
‘컨닝, 교활함의 매혹’은 이처럼 단순하게 정의내리기 힘든 ‘cunning’, 즉 ‘교활함’에 대한 이색적인 탐구서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률과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저자는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에서부터 마키아벨리, 홉스, 흄 등 사상가들은 물론, 탐정소설, 희곡, 자동차 영업사원의 편지 등 온갖 자료들을 누비면서 교활함의 철학적 의미를 추적했다.
책에 따르면 교활함의 세계는 “도덕성과 규칙 그리고 합리성의 여러 갈래 길들이 서로 겹쳐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매혹적인 미궁”이다. 세상은 ‘교활한 악당’과 ‘선한 바보’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저자는 교활함에 대한 선입견에도 도전한다. 그의 질문 몇 가지를 들어보자. 명백하게 선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활할 수 있는가? 이타적이면서도 교활할 수 있을까? 자기가 교활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 교활할 수 있을까? 저자의 답은 ‘그렇다’ 쪽인 듯하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교활함의 속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책은 “당신이 했던 모든 우아하고 명예로우며 원칙을 지켰던 행동들이 순전히 핑계에 지나지 않았을 가능성, 자기 자신을 속였을 가능성, 그리고 자기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더라면 애초부터 이같은 일련의 행동들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가식적인 겉모습과 실제 모습을 구별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겉모습이 실제 모습이 되기도 하는 등 둘의 경계는 모호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확실치 않다. 그 지식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의존해 생기는 것 아닌가.
책이 교활함에 대한 찬양서는 아니다. 섣부른 결론을 유보한 채 교활함에 얽힌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어에서 교활함을 뜻하는 ‘메티스’는 최고신 제우스의 첫 아내였다고 한다. 둘 사이에선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태어났다. 교활함이 지혜의 사악한 딸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교활함의 딸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정말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가 끌어들이는 질료들이 너무 방대하고 때로 난해해” 교활함이라는 미궁에 독자를 남겨둔 채 저자 혼자만 빠져나간 것 같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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