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 거침없던 그녀들[신여성, 길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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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경향신문 자료제공(www.khan.co.kr)
  • 07.04.13 09: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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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이 외출의 자유를 얻게 된 때는 불과 100년 전부터다. 19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장옷(머리부터 내려쓴 옷)을 벗고 집밖을 나서거나 대낮에 거리를 자유롭게 거닐 수 없었다. 1920년대 일제 식민지시대 근대 고등교육을 받은 이른바 ‘신여성’이 등장했고, 이들이 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여성의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 책은 근대를 살았던 신여성 20여명의 여행기를 묶은 책이다. ‘신여성’ ‘신여자’ ‘여성’ ‘별건곤’ ‘신가정’ ‘삼천리’ 등 근대 잡지에 실린 글들을 뽑아냈다. 통학, 원족(소풍), 수학여행, 국내 기행, 세계 여행, 유학 등으로 이어지는 신여성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바깥 세계를 끊임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개인의 가치를 찾아갔음을 알 수 있다.
책은 ‘학생’이 됨으로써 외출이 일상이 된 여학생 김복희의 ‘기차 통학’(별건곤, 1927년)이라는 글로 시작한다. 기차 통학의 첫째가는 설움은 “새벽밥을 채 다 먹지도 못하고 숟가락을 내던지고 뛰어도, 단 십여 걸음 남겨놓고 기차가 출발해 버릴 때”다. “남학생들 틈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헐떡거리며 뛰어가”지만 기차가 떠나버리면 “분해서 울고 부끄러워서” 운다.
여류시인 노천명은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월간 ‘여성’을 편집하던 1940년 회사에서 여름휴가를 받아 “닷새라는 기한과 약간의 금액으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도의 경제 가치를 거둘 것인가 궁리”한 뒤 묘향산으로 떠난다. 그는 호연지기를 가득 채우고 돌아온다.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향학열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다른 세계와 접촉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 최영숙은 ‘스웨덴 대학생활과 인도 인상기’(삼천리, 1932년)라는 글에서 “더 알아야겠다는 향학열은 물질의 고통이라는 것을 거리끼게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두번째 여의사이자 춘원 이광수의 부인인 허영숙은 ‘동경 유학기’(삼천리, 1936년)를 통해 조선에 나가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무료로, 불쌍한 사람은 찾아가서 해산시켜 줄 산원(산부인과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그는 1920년 5월 서울 서대문에 조선 최초의 산부인과 병원 ‘영혜의원’을 개업한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요소가 엄존하던 당시 세상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최영숙이 스웨덴에서 귀국한 지 5개월 만에 출산하다 사망하자 조선 잡지계는 발칵 뒤집혔다. 처녀가 임신을 한 데다 인도 청년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삼천리’는 “인도청년! 결국 태어날 아이도 조선 아이들과는 다르게 살빛은 까맣고 이빨은 희고 우는 소리도 다른 튀기 아이”라고 적고 있다.
이밖에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세계를 주유한 나혜석,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와 백신애, ‘조선의 노라’라고 불린 박인덕 등 쟁쟁한 신여성의 글이 담겨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복희, 정애, 김옥선 등 생몰 연대도 알 수 없는 여학생, 무명 시인의 글을 찾아 묶음으로써 일반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눈에 비친 근대의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여성 특유의 나긋나긋한 문체를 읽는 재미도 남다르다.
경향신문 기사·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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